|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임의진의 시골편지]빗물 새는 집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에 등장하는 할매를 꼭 빼닮은 송정댁을 면소재지에서 만났다. 둥근 고무 대야를 하나 사려고 나오셨단다. 묻지도 않았는데 부엌방에 비가 샌다는 말을 한숨에 섞어 보태시면서…. 입식으로 고친 부엌 천장 쪽에서 빗물이 찰찰 떨어지고 있나보다. 자녀들은 멀리 살고, 이장님은 봄 농사로 바쁘시고, 봄비는 간간이 할매를 괴롭히고 있음이렷다. 지붕 말고도 할머니 두 눈에 빗물이 뚝뚝 아니 똑똑 떨어지겠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 나오는 보안관 리틀 빌(진 해크먼). 현상금을 노린 총잡이들보다 백배천배 고약한 왈패인 보안관. 언덕배기에다 통나무집을 혼자 힘으로 지었는데 오만방자한 죗값인지 비만 내렸다하면 오만군데서 비가 샜다. 새집도 짓고 한번 살아보려고 했던 보안관은 늙고 병든 총잡이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비가 새는 집 장면을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시골 교회에 있을 때 예배당이 자주 비가 샜기 때문이다. 한번 새는 지붕은 좀처럼 물길이 잡히지가 않아 애를 먹게 만든다. 빗물 떨어지는 곳에다 양동이를 받쳐놓고 예배를 드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예배당은 빗물이 새는데 목사관은 멀쩡해서 죄스러워 밤에 잠이 오지를 않았다.
세상에는 만지고 싶은 것이 있다. 봄비는 그중에 하나다. 봄비가 내리면 천장이 새지도 않는데 손을 멀리 내밀어보고는 한다. 봄비가 손바닥에 떨어지면 당신에게도 만져보라고 그랬다. 그러다가 당신의 손을 처음 잡았다. 장미꽃을 들고 장례식에 동참하듯 지상에 내려온 봄비는 산다화 동백꽃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산벚꽃도 산수유꽃도 도화까지 죄다 떨어뜨리고 같이 강물로 흘러서 갔다. 마술사의 모자 속 비둘기처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봄꽃들이여. 나는 토방에 오래도록 앉아 떠나간 것들을 그리워했다.
밭에 상추도 갈고 그랬는데 봄비를 기다리지 못하겠다. 보안관이 지은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할매 부엌방을 걱정하게 된 것이다. 진짜 걱정도 팔자인 인간이야.
<임의진 목사·시인>
|
|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