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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2003<하루기도/생활성서>89
허물 벗을 때까지
라일락 잎에 얌전하게 벗어놓은 매미 허물을
아내가 건네줍니다.
매미가 나오느라고 찢어 놓은 등의 상처 말고는
아무데도 깨어지거나 부러지지 않은
말짱한 허물이네요.
한때 제 안에 살아 움직이던 생명이
지금은 어느 나무 가지에 날아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매미 허물의 갈색 눈알이 아침 햇살에 반들거립니다.
하지만 제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지요.
주인이자 생명인 매미가 제 안에 없으니까요.
아, 주님
저의 눈도 당신이 안에 계셔서 보고
저의 손도 당신이 안에 계셔서 움직이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예, 주님
때가 되어 당신이 당신 허물을 벗으실 마지막 순간까지.
제 몸은 당신을 모시고 주어진 길을 갈 것입니다.
허물인 세상에서 허물인 몸으로 살아가는
당신이 곧 저임을 일깨워 주시니 고맙습니다. 주님!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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