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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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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2005<하루기도/생활성서>91
묘목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보는데
횡단보도 신호등 아래에서 한 여인이
자기 허벅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쥐어박는 게 보였어요.
쥐어박을 때마다 아이가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는데
비틀거리는 아이를 연신 쥐어박는 겁니다.
곁에 있으면 그 여인 머리를 한 번 오지게 쥐어박고 싶더군요.
아이가 뭘 잘못했다 칩시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도 대거리도 하지 않는 어린것을
쥐어박고 또 쥐어박고 연신 쥐어박아야 합니까?
버스 안에서 스냅 사진 보듯이 순간적으로 본 장면이
아직도 제 머리에 선명히 남아있네요.
처음엔 아이가 안됐고 여인이 얄밉고 그랬습니다만
아마 틀림없이 그 여인도 어린 시절 자기보다 힘센 어른에게
수없이 쥐어박혔을 거리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 틀림없이 그랬을 거예요.
그러지 않았다면 오늘 제가 본 광경을 연출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니 저 '쥐어박기 전통'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오늘 쥐어박히며 비틀거리던 아이가 내일의 여인이 되어
제 허벅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이를 저렇게
쥐어박고 또 쥐어박을 것 아닙니까?
이제 알겠습니다.
왜 주님이 뺨 때린 자를 나무라거나 말리지 않고
뺨 맞은 자에게 대거리를 말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겠어요.
저 보기 흉한 '쥐어박기 전통'의 흐름을 끊는 길이
때리는 여인보다 맞는 아이에게 있다고 보신 것 아닙니까?
저쪽은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고목이고
이쪽은 아직 여린 묘목이니까요.
주님, 오늘 낮에 제천 어느 건널목 신호등 아래에서
쥐어박힐 때마다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던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어
저 '쥐어박기 전통'을 끊어 버리는 주인공으로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 아이 이름도 성도 아무것도 모릅니다만
주님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주님, 그 아이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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