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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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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43. 울렁이는 몰골
수원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 목사가 가족들과 함께 단강을 찾았습니다. 여선교회에서 소풍을 나오려 하는데 단강쪽이 어떨까 싶어 답사차 온 것이었습니다.
부론에 나가 막국수를 먹고 (그것도 답사중 하나였습니다) 단강농장이 있는 개울가로 나갔습니다. 우리 식구끼리 ‘율파’라 이름 붙인 개울이지요. 바로 아래 개울 이름이 ‘명파’ 였던지라, 둑에 있는 밤나무를 따라 ‘율파’라 이름을 지었지요.
잘 알려지지 않아 식구들끼리 지내기가 참 좋은 곳이었는데 이젠 그것도 다 글러버렸습니다. 농로로 쓰라고 개울을 질러 만들어 놓은 시멘트 길로 온갖 차들이 드나들게 되어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차와 사람이 몰리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한창 휴가 때가 지나고 마침 태풍이 지나간 뒤라 물이 많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해‘율파’를 권하러 그곳으로 나갔던 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개울로 막들어설 때였습니다. 개울 건너에서 왠 아주머니 둘이서 열심히 차를 닦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노인이었습니다. 깨끗한 개울물이 시원하게 흘러가는데 떡하니 차를 물속에 담고 차를 닦다니요. 저런 몰상식한 사람이 있나 싶어 화를 냈지요.
“개울에서 차를 닦으면 어떡합니까?”
일이 그렇게 되면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것 같은데 젊은 여자가 미안한듯 태연하게 대답을 합니다.
“차는 딴 데서 닦았고, 마무리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차 닦는 일을 멈출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어요.
“아주머니. 그만하세요. 아이들이 보는 게 참창피하지도 않으세요?” 아이들이 보는데서 어른이 그런 짓하고 있다는 게 여간 부끄럽지가 않았지요.
“네, 네 이젠 다 됐어요.” 그러면서도 차를 바퀴까지 닦는 게 아니겠습니까. 뒤따라 오던 친구가 마침 사진기를 메고 있었습니다. 답사차 오며 준비한 사진기였지요.
친구가 사진기를 들고 나서며 “아주머니, 안되겠네요. 사진을 찍어 고발을 해야지.”
일어 그렇게 되어서야 두 사람은 차 닦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이처럼 깨끗하고 좋은 개울가에 나와 차 닦을 생각을 하다니, 불쾌하기가 이를데 없었습니다.
가지고 나간 어항을 아이들과 놓으려고 준비를 하는데. 조금 전 차를 닦던 아주머니가 다가왔습니다.
“저, 차를 좀빼 주실래요?”
조금 전 닦아 놓은 차를 개울에서 빼 달라는 얘기였습니다. 그 차를 왜 나더러 빼달라 하느냐고 묻자 대답이 가관입니다. 남편이 저기서 자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자고 있으면 깨워다 빼야지 무슨 소리냐고 퉁박을 주려다 계속 싫은 소리만 하는것 같아 친구더러 좀 빼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친구가 가더니 나를 부릅니다. 승용차 운전을 안해봐 나더러 하라는 얘기였습니다.
할 수 없이 내가 가게 되었는데 가보니 매트까지 깨끗이 빨았더군요. 차를 빼려고 차에 올라탄 순간 나는 정말 아찔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차 카세트에서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 ‘복음 성가’였습니다.
“골고다에 언덕에서 가시관 쓸때-”
놀랍게도, 어처구니없게도 복음성가가 틀어져 있었습니다. 개울에 차를 대놓고 복음성가를 은혜롭게 들으며 차를 닦다니. 가슴이 울렁울렁 뛰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게 꼭 내가 그짓을 한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이게 오늘날 기독교인의 초상은 아닌가, 어지러웠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지 싶은 자가 왔는데, 그는 잠을 잔 게 아니라 개울에서 고둥을 잡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모습은 한없이 점잖아 보였습니다. ‘은혜롭게’ 보였지요. 그들은 깨끗하게 세차해 놓은 차에 올라타 개울을 건너 돌아갔습니다.
이런 일이 지극히 예외적인,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우리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몰골이 이리도 흉측한데요.
개울가에서 세차하던 차에서 들은 복음성가는 내내 속을 울렁이게 했습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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