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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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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44. 이 선생님께 드립니다.
누렇게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 위로 아침햇살이 퍼집니다. 농부가 흘린 땀이 어느새 익어 저리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 선생님께 글을 드리게 된 것은 선생님이 쓰신 <안녕! 아기공룡>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저는 단강이라는, 강원도의 한 시골에 사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마을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지요. 첫째는 4학년, 둘째는 2학년입니다. 4학년이 모두 4명. 2학년이 7명인 아주 작은 학교입 니다. 2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 숙제라며 가져온 책이 선생님이 쓴 책이었습니다.
독후감을 쓰는 숙제였지요. 아이의 숙제를 도울 겸 같이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바른 삶을 전하시기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의 수고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걸리는 몇 가지 점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댐을 건설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댐 건설을 한다는 말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모였고, 마침 댐 건설의 총책임자인 예니 아버지와 박박사가 도착하지요.
댐 건설을 못 한다는 주민들의 말에 그 이유나 알아보자 했는데, 주민들이 댄 그 이유란게 고작 ‘수량이 적어서’였습니다.
‘적은 물도 모으면 큰 물이 된다’는 박사의 말에 ‘그럼, 우리들은 어디에 가서 살라구...’ 하고 넘어가더군요. 얼마 전 인제의 내린천에 계획을 세웠다가 지역 주민들은 물론 환경단체의 거센 항의에 밀려 계획 자체가 취소된 일을 기억합니다.
고작 주민들이 댄 댐 반대 이유가 ‘물이 적어서’였다니 기가 막힙니다. 이 책이 ‘지구 환경과학도서’라는 이름으로 발간됐던데요, 댐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은 절박하고 절실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책 내용 전개상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으로는 너무 생각 없이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농부를 무시하는 표현엔 화가 납니다. ‘꽤 똑똑해 보이는 학생’(p130)도 그렇고, ‘이제 이곳 주민들은 박박사의 말에 정신을 잃고 있었어요’(p132)도 그렇습니다. ‘주민들은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 같았어요’(p135)도 그렇지요.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휑하니 벌리며 모두 좋아했어요.’(p136)
자기 말에 찬성하고 협조해 주면 복제한 공룡을 특수한 비행선으로 데려오겠다는 박사의 제안 다음에 나오는 표현은 ‘이 말에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남의 눈치를 보았어요.’ 더군요. 댐 만든다니까 반대하고 댐 만드는 대신 이렇게 좋은걸 해주겠다 하니까 좋아하는 농촌 주민들, 책 속의 농부들 모습은 그렇습니다. 내 지역의 환경문제를 위해 농사일을 미루고서도 나서서 막는 게 현실이고 그게 바른 태도일 텐데, 어쩐 일인지 책 속에선 ‘박사 말에’ (무식한) 농부들이 넋을 잃고 따라 갑니다. 굴욕감을 느끼게 됩니다.
주민들이 공무원으로 (그것도 공원의 관리인어었죠) 취직이 된다는 박사의 말에 ‘이제 산골 사람들은 박사님을 우러러보기 시작하였어요’ 했더군요. 그러면서 <박사님. 아까 저희들 행동을 용서하십시오. 모두 무식해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하고 무릎도 꿇고, 용서를 빌었어요.> 이 대목에서는 정말로 화가 치밀어 올라 한참 화를 삭혀야 했습니다.
무식하다면 누가 무식한 것이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하면 누가 용서 빌어야 할텐데,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습니다.
더군다나 ‘취직’이라는 말에 무릎을 꿇다니요. 소처럼 묵묵하게 일해 온 땅의 사람들을 너무 쉽게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얼굴은 싱글벙글 웃음으로 덩실덩실 춤을 출 것 같았어요.’(p139) 나는 거반 울고 싶은 마음인데 책 속에는 춤을 출 지경이라 했더군요. ‘한 농부가 부끄러워하며 손까지 살살 비비고 말했어요!’(p140) ‘아이고, 박사님들이 참 훌륭한 일을 하시는구먼요, 저희들은 그것도 모르고 공연히 원망까지 했구먼요’(p141) ‘농부는 좋아서 침까지 흘리고 있었어요.’(p141)
용서하십시오. 이 대목을 읽을 때 나는 선생님을 욕하고 말았습니다. 정말입니다. 한참을 욕했습니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분노를 참기 힘들었습니다.
‘어제 바보스럽게 보였던 농부가’(p144) 자식을 공원 파수꾼으로 취직시켜준다는 박사의 말에 ‘농부는 평생소원이 풀렸다고 절을 여러번 하고 돌아갔어요’(p147) ‘그리고는 이장은 (이장은 마을 대표지요)시골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맛있는 반찬으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장만했습니다.’(p147)
외람된 일인지 몰라도 저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왜 이 책이 독서감상문을 위한 책으로 선정됐는지 이유를 물으려 합니다. 표지에 붉게 써 있는 부제 ‘제1회 녹색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지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내 표지 속에는 선생님의 다양한 이력 중 ‘녹색문학회 사무국장’이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도대체 이게 무얼 말하는 건지요.
친절하게도 선생님 주소와 전화번호를 책에 적어 놓아 편지를 보냅니다. 무언가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귀한 수고에 무례함으로 답하는 것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 없지 않으나 책을 읽으면서도 이럴 순 없다 싶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숭고한 삶을 사는 이들은 분명 농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희철 드림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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