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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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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안경
기차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손에 들고 있는 안경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관용(寬容)에 대한 네 생각이 어떠한지를 말해줄 수 있겠느냐?"
"........."
"사람이 어떻게 하면 관용(寬容)을 베풀 수 있을까?"
"........."
"........."
묵묵부답. 한참 졸다가 깨어나 다시 물어 보았지만 역시 아무 말 없다. 그렇다면 그만두지! 대화를 포기하고 예산역이 가깝다는 방송에 일어날 채비를 하는데..."
"나처럼 하면 되겠지."
".........?"
"나는 아무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
"다만, 나를 통해 자네가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따름이지. 하기는 그것도 내가 따로 '하는 일'은 아니다."
"그것이 너의 관용인가?"
"자네가 나를 통해서 사물을 받아들이는 만큼의 관용이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네가 베푸는 관용은 아니쟎는가?"
"맞는 말이다."
"나는 관용에 대한 너의 생각을 물었다."
"방금 대답하지 않았나?"
"........."
"자네가 스스로 무엇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하면, 그만큼 자네는 관용을 베풀 수 없다. 자네에게 무엇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나'가 있는 한, 바로 그 '나'(ego)가 문턱이 되어 관용의 폭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관용은 백에서 아흔 아홉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열에서 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아득한 창공(蒼空)을 보아라. 세상에 저보다 큰 관용이 어디 있겠는가? 창공(蒼空)은 공(空)이기 때문에, 무엇을 향해 관용을 베풀려는 내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더없이 큰 관용을 영원히 베풀고 있는 것이다. 안경이 하늘처럼 투명하지 않다면, 그래서 본연(本然)의 맑고 깨끗함을 잃는다면, 그러면 그것은 더이상 안경이 아니고 따라서 관용하고 그만큼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관용(寬容)이란, 내가 베푸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맑게 비우는 것이다. 이게 관용에 대한 나,안경의 생각이다"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 나는 서둘러 안경알을 닦았다. 안경이 스스로 안경을 닭지 못한다는 사실이 위안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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