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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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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18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53>에서
18. 도토리 나무 낙엽
한참 동안, 도토리 나무 낙엽(落葉)하나를 손에 들고 바라본다. 볼수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놀랄 만큼 가볍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도토리나무 낙엽'이라고 부르면 그것이 과연 이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도토리나무 낙엽임에 틀림없지만 도토리나무 낙엽이 아니다.
"자네가 시방 자네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발자취일세. 어떤가?"
"가볍군."
"가볍겠지. 무릇 발자취란, 그것이 무엇의 발자취든, 본디 가벼운 것 아닌가? 그림자에 무게가 없듯이."
"그렇다면 너는 누구의 발자취냐?"
"나의 정체(正體)를 밝히라는 얘긴가?"
"그렇다."
"그건 자네도 알다시피 불가능일세. 인간의 어떤 말로도 나의 정체를 드러내보일 수가 없거든"
"네가 너의 발자취라면, 너를 여기 이런 모양으로 남긴 너는 지금어디 있느냐?"
"나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네. 여기 '있는' 내가 보이지 않는가? 나에게는 언제나 '여기'밖에 없는데, 내가 여기를 떠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러나 너는 네 입으로, '자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발자취'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지"
"그렇다면 너의 발자취 아닌 '너'가 따로 있다는 얘기 아니냐?"
"옳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군."
"말이 안되니 오히려 말이 되는 걸세. 자, 생각해 보시게. 나는 낙엽이다! 맞는가?"
"맞다"
"낙엽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떨어진[落] 잎 [葉] 이라는 말인데, 내가 어디에서 떨어졌는가?"
"도토리나무지"
"내가 도토리나무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는 도토리나무에 붙어 있었다는 얘기겠지?"
"........."
"내가 어디에서 바람타고 날아와 도토리 나무에 붙었는가?"
"아니다."
"나는 도토리 나무에서 나왔네. 도토리 나무와 나는 한몸이었지. 자네의 손과 자네가 한 몸이듯이. 그러니까 나는 도토리나무 잎이면서 도토리나무였다는 그런 얘길세."
"........."
"내가 도토리나무라면, 나무가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터인데, 나보고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 건 좀 이상한 질문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너는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더 이상 나무가 아니다. 너를 나무와 동일시하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다."
"그렇게 보면 그렇겠지. 그러나 다르게 보면 다르다네. 그래서 내가 나의 발자취라고 하지 않았나? 나무에서 떨어진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발자취라네. 겉으로 드러나 자네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나의 발자취일 뿐, 내가 아닐세. 그건 내가 푸른색을 입고 나무에 붙어 있을 때도 마찬가지지. 나는 자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네. 자네 눈은 나를 볼 수 없어. 그건 자네 눈이 자네를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하지. 그러나 한편 자네는 사물을 보면서 그 사물을 통해 자네한테 눈이 있음을 알 수 있네. 마찬가지로 나의 발자취에서 자네는 나를 볼 수도 있지. 적어도 이론상(理論上)으로는 그렇다네."
"이론상이라?"
"그래, 이론상!"
여기까지, '대화'로 보기 어려운 '상념(想念)'이 이어졌을 때, 갑자기 '도토리나무 낙엽'이 말허리를 끊고 한마디 던진다.
"내가 나의 발자취이듯이 너 또한 너의 발자취이다.! 나한테서 나를 보려하지 말고 너한테서 너를 보아라. 나는 네 곁에 스치듯이 있다가, 말 그대로, 자취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너는네가 숨지는 순간까지 너와 함께 있다. 길을 떠나서 길을 찾지 말고 길에서 길을 찾아라."
"........."
"누가 뭐라고 한들 그게 다 무엇이냐? 티끌보다 가벼운 것이 '남의 말'이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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