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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香)

이현주 이현주............... 조회 수 2391 추천 수 0 2001.12.29 22: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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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26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61 >에서

26. 향(香)

 

향(香)이 피어 오른다. 향(香)에 잠겨 있던 향(香)이 불에 타면서 피어 오른다. 타버린 재는 더 이상 향을 머금지 못한다. 그러니까 불 붙은 향은 시방 세상에 하직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저것을 '죽음'이라고 부른다면, 온 몸의 향을 남김없이 쏟아놓고 사라지는 향( 香)의 죽음이야말로 얼마나 향기로운가?
"자네 속에도 불이 타고 있다네. 무릇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속에 불이 타고 있음이라, 불이 꺼지면 생명도 꺼지고 말지. 불에 타오르지 않는 향은 향이 아닐세."
"그렇지만, 불이 당겨지기 전에도 네 몸에서는 향내가 나던데?"
"이 세상에 생명을 지니고 태어나기 전 자네 몸에서도 향내가 났다네."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한 가지 이치가 만가지 사물에 통한다는 걸 모르나? 나를 보면 자네를 아는거지."
"불 붙기 전에도 이미 네 몸에서 향내가 풍겼는데 어째서 불에 타오르지 않는 향은 향이 아니라고 하느냐?"
"이런 말이 있지.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라야 사람이지."
"그래서, 타오르지 않는 향은 향이 아니라는 말이냐?"
"자네는 내가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알기로는, 향나무를 비롯한 여러 향료들을 섞어서 너를 만들었다."
"그것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대지(大地)에 있지."
""그리고 하늘에 있네. 하늘이 없으면 대지 또한 없으니까."
"그래서? 그것이 네 몸에 불이 타오르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자네는 '불'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
"불은 내 몸에 향과 함께 처음부터 잠재되어 있었네. 자네가 불꽃을 당김으로써 내재된 불이 밖으로 타오르며 향내를 피우게 되지. 한번 불이 붙으면 그 뒤로는 내 몸이 스스로 불로 바뀌어 타오른다네. 누가 일부러 끄지 않는 한."
"그래도, 타오르지 않는 향은 향이 아니라는 네 말은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가지 않는 길도 길인가?"
"........."
"사랑하지 않는 사랑도 사랑인가?"
"........."
"나는 불에 타서 피어오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네. 고맙게.자네가 나를 나로 살게 해주었으니."
"시방 너는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자네는 아닌가?"
".........."
"불꽃에 대하여,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불꽃에 대하여, 우리 함께 감사하세. 자네의 인생도 나처럼 사라지면서 피어오르는 향내가 되기를..."
"내 인생이 과연 누구에게 무슨 향내를 피울 수 있을는지"
"그건 걱정마시게. 자네가 어떤 향을 피울 것인지는 자네가 아니라 자네를 세상에 보내신 분이 이미 정해 놓으셨으니, 그대로 될 것일세."
"그럼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자네 눈에는 내거 시방 무얼 하고 있는 것 같은가?"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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