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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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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39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69 >에서
39.초여름 떨어진 감 열매
너무 많은 열매가 맺혔기 때문일까? 감나무가 스스로 덜어내듯이, 이제 막 생겨난 열매를 툭 툭 떨어뜨린다. 사정없이 떨어져 길 바닥에 뒹구는 것들 가운데 하나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 놓는다. 제법 무게가 느껴진다.
꼭지 부분이, 톱밥 담은 주머니처럼 움푹 들어가 있다. 이렇게 속이 부스러졌으니 더 이상 꼭지에 달려 있을 수 없었겠지. 여기서도 이른 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인가? 감나무를 올려다 본다. 많은 열매들이 싱싱한 6월의 감나무 잎들 사이에 매달려 있다. 햇빛을 받아 반들거린다.
떨어진 열매들과 달려있는 열매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라 놓은 것일까?
"우리는 같은 운명이라네. 같은 길을 가고 있지."
"같은 길이라고? 너는 이렇게 떨어져 길바닥을 뒹굴고 다른 열매들은 저렇게 나무에 달려 있는데, 그런데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보기에 따라 달리 보일수도 있겠지."
"그러면, 보기에 따라 같아 보일수도 있다는 말이군?"
"사람들은 흔히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런 것은 세상에 없다네. 다만 그것을 그렇다고 보는 관념(觀念)이 있을 따름인데, 그 관념 자체가 또한 수없이 바뀌고 달라지고 그러지."
"........"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을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들에 견주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일세.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나무에 달려있는 열매들과 견주어 보지 않는다네."
"........."
"우리는 하나요, 같은 운명체거든. 떨어진 열매들이 없으면 달려 있는 열매들도 없다네."
"........."
"사전을 찾아 보시게 낙과(落果)란 단어가 있을게야."
"있구먼. '내부적 외부적인 원인으로 과실이 발육 도중에 나무에서 떨어지는일'(이희승 편) 이라고 풀이 돼 있네."
"우리는 '내부적 원인'으로 떨어진 열매에 해당되겠군."
"무엇이 내부적 원인인가?"
"우리가 이렇게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들이 제대로 건강하게 자라지를 못한다네. 어머니 몸에서 젖이 무한량 나지 않거든."
"어머니라니?"
"저 감나무가 우리 어머니 아닌가?"
"오, 그러니가 네가 너를 희생하여 다른 열매를 살린단 말이냐?"
"희생? 희생이 무엇인가?"
"남을 위해서 나를 죽이는 일이지."
"우린 그런 일 할 줄 모른다네. 어떻게 남을 위해 나를 죽인단 말인가?"
"희생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건 자네 생각이고, 도대체 남이 없는데 어떻게 남을 위해서 나를 죽인단 말인가?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야 우리가 살아 남는단 말일세.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 듣겠나?"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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