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김남준 01 불꽃처럼 - 두란노/하나님의 백성은 불꽃처럼 살아야 한다
탁월한 적응력
인간은 고장난 것들에 대하여 처음에는 불편해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탁월하게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뒤틀린 기독교 신앙과 망가진 신앙 공동체에 탁월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적 각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불편을 못 느끼며 살아가던 자신과 교회의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그 이상의 탁월한 삶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과 자신은 마땅히 그것을 누리며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전에 불편을 느끼지 못하던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고통을 느끼며 그럭저럭 이어가던 교회 생활의 결함에 대해 깊이 눈뜨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각성과 교회의 영광스러운 회복을 논의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수의 것이든, 소수의 것이든 그들의 느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facts)'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처한 영적인 현실 속의 사실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두가지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성경말씀이고 또 하나는 객관적인 교회의 경험, 곧 역사입니다.
김남준 02 불꽃처럼 - 두란노/하나님의 백성은 불꽃처럼 살아야 한다
유일한 대안
지금 우리 가운데는 경박한 낙관주의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단은 가치 있는 슬픔 보다는 가치가 적은 기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기쁨이 진지한 슬픔을 몰아내고, 값싼 낙관이 경건한 우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세상 한 가운데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교회로부터 적게 영향을 받고 있으며,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은 더 커다란 영향을 교회에 끼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앞에 무릎을 꿇고 배우는 대신 교회가 부패한 세상과의 타협을 배우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지적대로 "오늘날의 복음주의는 허울만 좋을뿐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한 길로 매진하기 보다는 현실 적응과 타협의 수완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진정한 변화의 영향을 끼치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자신이 무엇인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와 유사한 시대를 살았던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이러한 영적인 위기를 넘기고, 메마른 심령을 안고 살아가던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금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 보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백성들로 회복되었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탁월한 적응력
인간은 고장난 것들에 대하여 처음에는 불편해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탁월하게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뒤틀린 기독교 신앙과 망가진 신앙 공동체에 탁월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적 각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불편을 못 느끼며 살아가던 자신과 교회의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그 이상의 탁월한 삶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과 자신은 마땅히 그것을 누리며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전에 불편을 느끼지 못하던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고통을 느끼며 그럭저럭 이어가던 교회 생활의 결함에 대해 깊이 눈뜨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각성과 교회의 영광스러운 회복을 논의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수의 것이든, 소수의 것이든 그들의 느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facts)'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처한 영적인 현실 속의 사실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두가지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성경말씀이고 또 하나는 객관적인 교회의 경험, 곧 역사입니다.
김남준 02 불꽃처럼 - 두란노/하나님의 백성은 불꽃처럼 살아야 한다
유일한 대안
지금 우리 가운데는 경박한 낙관주의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단은 가치 있는 슬픔 보다는 가치가 적은 기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기쁨이 진지한 슬픔을 몰아내고, 값싼 낙관이 경건한 우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세상 한 가운데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교회로부터 적게 영향을 받고 있으며,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은 더 커다란 영향을 교회에 끼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앞에 무릎을 꿇고 배우는 대신 교회가 부패한 세상과의 타협을 배우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지적대로 "오늘날의 복음주의는 허울만 좋을뿐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한 길로 매진하기 보다는 현실 적응과 타협의 수완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진정한 변화의 영향을 끼치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자신이 무엇인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와 유사한 시대를 살았던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이러한 영적인 위기를 넘기고, 메마른 심령을 안고 살아가던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금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 보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백성들로 회복되었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
|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