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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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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42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71 >에서
42.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
이름을 알 수 없는 날벌레 한 마리, 책상 머리에 와 앉더니 움직일 줄 모른다. 겉모양은 대강 시늉하여 그려 보지만 저 검게 빛나는 아름다움은 도저히 그릴 수 없다.
인간이 어떤 물건인가? 눈에 띄는 대로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질에, 이 벌레에겐들 어찌 이름을 달아주지 않았겠는가만, 다행이다! 나는 이벌레의 이름을 모른다. 무엇을 또는 누구를 만날 때, 상대의 이름을 먼저 아는 것이 과연 그 만남의 순수에 빛을 비출까? 아니면 그늘을 드리울까? 내가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었더라만, 정말 그럴까? 이름을 안다는게 그게 과연 둘의 만남을 꽃으로 피어나게만 할까?
산길을 가다가 누가 "이게 무슨 나무지?" 하고 물을 때 "응. 그건 층층나무야." 하고 대답하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나무를 알고 있다는 착각이 그 얼굴에서 빛난다.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나무의 이름이지 나무기 아니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나무의 이름이 아니라 나무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의 이름은 나무가스스로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방(一方)으로 붙여준 것이다. 그러니 이름에 주인이 있다면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다. 층층나무에게 다가가 슬그머니 물어본다. "네가 층층나무냐?" 그렇다는 대답을 나는 단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날벌레'도 아닐세."
저 물건이 새까만 머리를 불빛에 반들거리며 말을 걸어 온다.
"그러면 무엇이냐?"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그것은 자네들 마음이지만, 알아두시게, 어떤 이름도 내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
"그리고, 그것은 자네한테도 마찬가질세. 자네 이름은 자네가 아니라네."
"그쯤은 나도 알고 있다."
"알면 뭘하나? 그대로 살지 못할 바에야."
"........"
"우리가 서로 이름을 지니는 것은, 이름 없이 서로 만나기 위해서 일세. 통성명(通姓名)을 하는 즉시 이름 따위 치워버리게. 그래야 우리가 말 그대로 만물과 일체되어 살아갈 수 있다네. 옛 어른 말씀에 도상무명(道常無名)이라하지 않았나? 세상에 도(道)아닌 물건이 없거늘, 어찌 무엇이 그 이름을 끝내 고집한단 말인가?"
말을 마치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맣고 까만 물건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버린다. 눈깜빡할 사이 일이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살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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