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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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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작은이야기 2000년 5월호에서
1.
가랑비가 그치자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의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장흥 천관산을 넘어온 태양은 강진 탐진 들판을 다사롭게 달구며 봄의 중 턱에서 여름의 저만치로 나날이 길을 서두르고 있 다.
올 여름에도 선욱이 지훈이 남준이가 불알을 짤랑거리며 물넘이에서 멱을 감을까? 녀석들이 올 해는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멱을 감지 않으면 어 쩐다지?
그렇다면 물넘이에서 멱을 감을 만한 아이 들이라곤 없는데 말이다. 당당 먼 여름 일을 벌써 끄당겨와 별 해괴한 걱정을 다 한다 하시겠다. 이 러니까 내가 비쩍 마르고 살이 안 찌는가 보다. 아침 일곱시 정각, 어김없이 마을 방송은 시작되 었다.
요즘 이장님이 주로 틀어대는 송대관의 네 박잔가 다섯 박잔가 하는 노래가 아침의 고요를 와 장창하고 깨뜨린다. 마을 방송을 알리는 나팔수 노 릇을 한동안 새마을 운동 주제가가 하다가 지금은 뽕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아침 시간을 송대관, 태진아며 남자는 여자를 귀찮 게 핸가 뭐신가 하는 망측한 가사의 노래까지 필히 기십여 분을 들어야 한다면, 그대는 어떻겠는가. 살고 싶겠는가, 죽고 싶겠는가? 처음 이사 와 몇 달 동안은 너무 견디기 괴로워 베개로 머리를 누르고 그 위에 이불까지 뒤집어써 야 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오냐 그래 틀어라 '로 마음 정리가 되었다. 제대로 말하자면 그 끈덕 짐에 두손들어버린 것이다. 노래가 몇 곡 끝나면, 이장님은 잠자는 아이를 깨우는 심술궂은 아버지처 럼 클클 가래기침을 개어내시며
"하나 둘. 마이크 를 시험합니다요. 하나 둘. 잘 들리싱게라우?"
그 리고는 쇳소리 나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본론을 꺼 내기 시작한다. 오늘 방송은 근 일주일을 징상스럽던 온천 관광 건의 대미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관광버스가 여덟 시까지 마을 앞에 당도하니 가기로 약정금을 낸 분 들은 서두르란다. 농사가 한창일 때 이런 일은 꿈 도 못 꾼다. 마침 나들이하기에 좋은 시기가 이맘 때 아니겠나.
관광버스가 마을로 내려가는 걸 예배당 변소에서 나오다 보았다. 지지리도 운이 없는 관광버스로구 나 싶었다. 우리 동네 아짐들같이 버스춤(관광버스 에서 엉덩이를 마구 흔들며 추어대는 춤)을 목숨 바쳐 추는 이들도 드물 것이기에 말이다. 아저씨들 은 가만히 앉아 구경이나 해야지 일어나 춤이라도 한번 땡기려 했다가는 아짐들 엉덩이에 천금같이 아끼는 허리뼈 나가기에 딱 좋다.
그 큰 방뎅이에 한번 받혔다가 뒤로 나자빠지지 않을 장정이 어디 있겠는가. 가고 오고 하는 내내 버스춤을 추어댈 터인데, 저 버스가 그 하중을 어찌 다 견딜지….
여하간 탈없이 잘 다녀오세요, 즐거운 여정을 빌어 드렸다.
2.
마을에 남은 사람이라곤 나처럼 재미하고는 담 쌓은 인간들이나 먼 행보가 어려운 연로하신 분들, 혹은 집에 돈 되는 물건이 있어 도저히 불안하여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부자일 뿐이리라.
마음 같아 선 나도 관광버스에 올라 같이 노래도 부르고 흔들 어대고도 싶은데, 이놈의 목사 체면이 어디 그런 가. 예수님이라면 분명히 오늘 그 버스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리고 온천에 맨 먼저 발가벗고 뛰어들어 찌뿌드드한 삭신을 녹이고 낮술에 발그레 취해서 버스춤의 진수를 본때로 보여주셨을 텐데….
개집 앞에 앉아 별똥별이랑 놀던 해빈이가 그도 싫증이 나는지 자전거를 태워달랬다. 아이를 자전 거 뒤에 태우고 마을로 내려갔는데 을덕 씨가 구판 장 앞 공중 전화통에 오그려 앉아 담배를 뻑뻑 빨 아대고 있었다.
사람의 종류에, 내놓은 사람과 내 놓을 만한 사람이 있다던데, 을덕 씨는 일찍이 내 놓은 사람으로 이 동네 대명사가 된 사람이다.
수 전증까지 보이는 알코올 중독인데다 성질머리도 뭣 같아서 피식하면 애들마냥 쌈박질이었다. 학명 마 을에 제 집인 함석집이 있긴 하지만, 태생이 이곳 이라 안골에 주로 내려와 옛 어머니 살던 빈집에 거하는 날이 많다. "저만 떨쿼놓고 가부렀다고 인데까정 저라고 앉 어 있다요."
구판장에 마실 나온 북일댁 할머니가 살짝이 귀띔을 해주셨다. 돈 안 내고 그냥 한번 얹 혀서 가볼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다른 사람 같았으 면 가엾은 마음에 갹출을 해서라도 데려갔을 것이 다.
하지만 을덕 씨가 누군가. 이틀이 멀다 하고 술주정이 가관인 개망나니가 아닌가. 웨하스 하나를 사들고 나오는 길에 을덕 씨를 일 으켜세웠다.
"조반 안 드셨재라우? 교회로 갑시 다." 전 같으면 됐다고 뒷걸음칠 그가 언짢은 마음 을 위로받고 싶은가 해빈이를 무동 태우고서 내 자 전거를 따라왔다. 집에 당도하자마자 춘향가 중 '갈까부다'를 찾아 틀었다. 염장을 지르는 노래일 수 있겠지만, 오늘 을덕 씨의 배경 음악으로 적격이다 싶었다.
식사를 다 마친 을덕 씨에게 "같이 못 가서 서운하신가 본 디 화는 쪼께 풀리셨어라?"
물었더니 "지가 무담씨 이란다요? 웽간하믄 넘어갈라 캤는디 인자 더는 못 참겄구만이라우. 작것들이 지를 무시하기를 몀생? (염소) 똥만도 못허게 여긴당게요."
거머쥔 주먹을 푸르르 떨며 그랬다. 배도 부르고 하여 그 길로 집에 돌아간 줄 알았 는데 읍내 나가는 길에 보니 교회 앞길 버스 승강 장 속에 웅크려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집에 들 어가 잘 일이지 왜 저렇게 노상에서 자는 걸 좋아 할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읍에 다녀오며 다시 보 니 여태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게 아닌 가.
'혹시 저 사람 지금 관광버스 기다리는 거 아 냐?' 그렇다면, 그렇다면 큰일인데. 3. 저녁이 으슥해진 즈음, 텃골 榕載〈?예배당 앞 길에 버스가 멈춰 섰다. '앗싸라비아, 으싸으싸' 방정맞은 추임새가 들어간 노랫소리로 보아 아침에 떠난 관광버스였다.
나는 승강장에 누워 있던 을덕 씨 생각에 "왐마 큰일났네" 하면서 서둘러 나가보 았다. 어디서 또 술을 먹고 나타나 이장님을 때려 눕히든지 아니면 버스 기사나 마을 분들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버스에는 아직 양이 덜 찼나 섭섭한 아짐들이 몸 을 흔들고 있었고 운전 기사는 어서 내리라는 투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앉아 있었다.
가만 보니 교인들 도 몇 보였다. 나를 보고는 카바레에 들이닥친 카 메라 출동을 만나기나 한 듯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 력했다. "잘 노시고 오셨어요? 얼굴이 화악들 피셔 부렀네." 반겼더니 머리를 긁적이시며 달아나신다. 그러는 경황인데 멀찍이서 벼락 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재밌드냐? 재밌어부렀어?" 얼게벌게하고 달 려드는 을덕 씨 소리였다. 버스에서 서둘러 내린 잣골 진씨가 "을덕이, 어른들 계신디 이라믄 안 되 재." 감아 잡으면서 관광 기념이라는 글씨가 선명 한, 효자손 하나를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필요 없 당게라." 을덕 씨는 사정없이 땅바닥에다 효자손을 팽개쳐버렸다.
그걸 다시 주운 신정 양반이 향나무 로 깎은 듯 보이는 밥주걱까지 하나 보태어 쥐어주 며 "을덕아이, 니가 없응게로 시상 재미 한테기 없 드라이. 널 데꼬 가야 썼는디 말여" 하시면서 을덕 씨를 추켜세웠다. 이장님은 "으짤 수 없었지 않응 가. 자 이거 한잔 들라고." 술잔을 내밀었다.
을덕 씨는 푸짐한 안주와 소주를 보더니만 눈에 세운 핏 대를 허물고, "죙일 기다렸는디…" 그러면서 못다 한 행패를 서운해하며 술잔을 받았다.
동네 분들은 다 내려 집으로 흩어지고 관광버스 는 허정허정 마을 밖으로 내뺐다. 술병을 꿰차고 버무리떡 한 접시도 따로 챙긴 을덕 씨는 이 밤 어 디로 갔을까.
종일 별렀다는 게 고작 이 정도라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깡탈이 날로 싱거워 지는 그이가 안쓰럽다. 이장님은 마지막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시더니 내일 아침 방송을 염두하고 그 러시나 사이다 한 잔으로 여러 번 목을 헹구셨다.
승강장에 앉아 달구경을 하던 나를 보시고는 한 잔 건네신다. 토-옥 쏘는 사이다 맛이 꼭 이 마을에 사는 맛 같았다.
1.
가랑비가 그치자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의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장흥 천관산을 넘어온 태양은 강진 탐진 들판을 다사롭게 달구며 봄의 중 턱에서 여름의 저만치로 나날이 길을 서두르고 있 다.
올 여름에도 선욱이 지훈이 남준이가 불알을 짤랑거리며 물넘이에서 멱을 감을까? 녀석들이 올 해는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멱을 감지 않으면 어 쩐다지?
그렇다면 물넘이에서 멱을 감을 만한 아이 들이라곤 없는데 말이다. 당당 먼 여름 일을 벌써 끄당겨와 별 해괴한 걱정을 다 한다 하시겠다. 이 러니까 내가 비쩍 마르고 살이 안 찌는가 보다. 아침 일곱시 정각, 어김없이 마을 방송은 시작되 었다.
요즘 이장님이 주로 틀어대는 송대관의 네 박잔가 다섯 박잔가 하는 노래가 아침의 고요를 와 장창하고 깨뜨린다. 마을 방송을 알리는 나팔수 노 릇을 한동안 새마을 운동 주제가가 하다가 지금은 뽕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아침 시간을 송대관, 태진아며 남자는 여자를 귀찮 게 핸가 뭐신가 하는 망측한 가사의 노래까지 필히 기십여 분을 들어야 한다면, 그대는 어떻겠는가. 살고 싶겠는가, 죽고 싶겠는가? 처음 이사 와 몇 달 동안은 너무 견디기 괴로워 베개로 머리를 누르고 그 위에 이불까지 뒤집어써 야 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오냐 그래 틀어라 '로 마음 정리가 되었다. 제대로 말하자면 그 끈덕 짐에 두손들어버린 것이다. 노래가 몇 곡 끝나면, 이장님은 잠자는 아이를 깨우는 심술궂은 아버지처 럼 클클 가래기침을 개어내시며
"하나 둘. 마이크 를 시험합니다요. 하나 둘. 잘 들리싱게라우?"
그 리고는 쇳소리 나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본론을 꺼 내기 시작한다. 오늘 방송은 근 일주일을 징상스럽던 온천 관광 건의 대미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관광버스가 여덟 시까지 마을 앞에 당도하니 가기로 약정금을 낸 분 들은 서두르란다. 농사가 한창일 때 이런 일은 꿈 도 못 꾼다. 마침 나들이하기에 좋은 시기가 이맘 때 아니겠나.
관광버스가 마을로 내려가는 걸 예배당 변소에서 나오다 보았다. 지지리도 운이 없는 관광버스로구 나 싶었다. 우리 동네 아짐들같이 버스춤(관광버스 에서 엉덩이를 마구 흔들며 추어대는 춤)을 목숨 바쳐 추는 이들도 드물 것이기에 말이다. 아저씨들 은 가만히 앉아 구경이나 해야지 일어나 춤이라도 한번 땡기려 했다가는 아짐들 엉덩이에 천금같이 아끼는 허리뼈 나가기에 딱 좋다.
그 큰 방뎅이에 한번 받혔다가 뒤로 나자빠지지 않을 장정이 어디 있겠는가. 가고 오고 하는 내내 버스춤을 추어댈 터인데, 저 버스가 그 하중을 어찌 다 견딜지….
여하간 탈없이 잘 다녀오세요, 즐거운 여정을 빌어 드렸다.
2.
마을에 남은 사람이라곤 나처럼 재미하고는 담 쌓은 인간들이나 먼 행보가 어려운 연로하신 분들, 혹은 집에 돈 되는 물건이 있어 도저히 불안하여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부자일 뿐이리라.
마음 같아 선 나도 관광버스에 올라 같이 노래도 부르고 흔들 어대고도 싶은데, 이놈의 목사 체면이 어디 그런 가. 예수님이라면 분명히 오늘 그 버스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리고 온천에 맨 먼저 발가벗고 뛰어들어 찌뿌드드한 삭신을 녹이고 낮술에 발그레 취해서 버스춤의 진수를 본때로 보여주셨을 텐데….
개집 앞에 앉아 별똥별이랑 놀던 해빈이가 그도 싫증이 나는지 자전거를 태워달랬다. 아이를 자전 거 뒤에 태우고 마을로 내려갔는데 을덕 씨가 구판 장 앞 공중 전화통에 오그려 앉아 담배를 뻑뻑 빨 아대고 있었다.
사람의 종류에, 내놓은 사람과 내 놓을 만한 사람이 있다던데, 을덕 씨는 일찍이 내 놓은 사람으로 이 동네 대명사가 된 사람이다.
수 전증까지 보이는 알코올 중독인데다 성질머리도 뭣 같아서 피식하면 애들마냥 쌈박질이었다. 학명 마 을에 제 집인 함석집이 있긴 하지만, 태생이 이곳 이라 안골에 주로 내려와 옛 어머니 살던 빈집에 거하는 날이 많다. "저만 떨쿼놓고 가부렀다고 인데까정 저라고 앉 어 있다요."
구판장에 마실 나온 북일댁 할머니가 살짝이 귀띔을 해주셨다. 돈 안 내고 그냥 한번 얹 혀서 가볼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다른 사람 같았으 면 가엾은 마음에 갹출을 해서라도 데려갔을 것이 다.
하지만 을덕 씨가 누군가. 이틀이 멀다 하고 술주정이 가관인 개망나니가 아닌가. 웨하스 하나를 사들고 나오는 길에 을덕 씨를 일 으켜세웠다.
"조반 안 드셨재라우? 교회로 갑시 다." 전 같으면 됐다고 뒷걸음칠 그가 언짢은 마음 을 위로받고 싶은가 해빈이를 무동 태우고서 내 자 전거를 따라왔다. 집에 당도하자마자 춘향가 중 '갈까부다'를 찾아 틀었다. 염장을 지르는 노래일 수 있겠지만, 오늘 을덕 씨의 배경 음악으로 적격이다 싶었다.
식사를 다 마친 을덕 씨에게 "같이 못 가서 서운하신가 본 디 화는 쪼께 풀리셨어라?"
물었더니 "지가 무담씨 이란다요? 웽간하믄 넘어갈라 캤는디 인자 더는 못 참겄구만이라우. 작것들이 지를 무시하기를 몀생? (염소) 똥만도 못허게 여긴당게요."
거머쥔 주먹을 푸르르 떨며 그랬다. 배도 부르고 하여 그 길로 집에 돌아간 줄 알았 는데 읍내 나가는 길에 보니 교회 앞길 버스 승강 장 속에 웅크려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집에 들 어가 잘 일이지 왜 저렇게 노상에서 자는 걸 좋아 할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읍에 다녀오며 다시 보 니 여태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게 아닌 가.
'혹시 저 사람 지금 관광버스 기다리는 거 아 냐?' 그렇다면, 그렇다면 큰일인데. 3. 저녁이 으슥해진 즈음, 텃골 榕載〈?예배당 앞 길에 버스가 멈춰 섰다. '앗싸라비아, 으싸으싸' 방정맞은 추임새가 들어간 노랫소리로 보아 아침에 떠난 관광버스였다.
나는 승강장에 누워 있던 을덕 씨 생각에 "왐마 큰일났네" 하면서 서둘러 나가보 았다. 어디서 또 술을 먹고 나타나 이장님을 때려 눕히든지 아니면 버스 기사나 마을 분들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버스에는 아직 양이 덜 찼나 섭섭한 아짐들이 몸 을 흔들고 있었고 운전 기사는 어서 내리라는 투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앉아 있었다.
가만 보니 교인들 도 몇 보였다. 나를 보고는 카바레에 들이닥친 카 메라 출동을 만나기나 한 듯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 력했다. "잘 노시고 오셨어요? 얼굴이 화악들 피셔 부렀네." 반겼더니 머리를 긁적이시며 달아나신다. 그러는 경황인데 멀찍이서 벼락 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재밌드냐? 재밌어부렀어?" 얼게벌게하고 달 려드는 을덕 씨 소리였다. 버스에서 서둘러 내린 잣골 진씨가 "을덕이, 어른들 계신디 이라믄 안 되 재." 감아 잡으면서 관광 기념이라는 글씨가 선명 한, 효자손 하나를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필요 없 당게라." 을덕 씨는 사정없이 땅바닥에다 효자손을 팽개쳐버렸다.
그걸 다시 주운 신정 양반이 향나무 로 깎은 듯 보이는 밥주걱까지 하나 보태어 쥐어주 며 "을덕아이, 니가 없응게로 시상 재미 한테기 없 드라이. 널 데꼬 가야 썼는디 말여" 하시면서 을덕 씨를 추켜세웠다. 이장님은 "으짤 수 없었지 않응 가. 자 이거 한잔 들라고." 술잔을 내밀었다.
을덕 씨는 푸짐한 안주와 소주를 보더니만 눈에 세운 핏 대를 허물고, "죙일 기다렸는디…" 그러면서 못다 한 행패를 서운해하며 술잔을 받았다.
동네 분들은 다 내려 집으로 흩어지고 관광버스 는 허정허정 마을 밖으로 내뺐다. 술병을 꿰차고 버무리떡 한 접시도 따로 챙긴 을덕 씨는 이 밤 어 디로 갔을까.
종일 별렀다는 게 고작 이 정도라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깡탈이 날로 싱거워 지는 그이가 안쓰럽다. 이장님은 마지막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시더니 내일 아침 방송을 염두하고 그 러시나 사이다 한 잔으로 여러 번 목을 헹구셨다.
승강장에 앉아 달구경을 하던 나를 보시고는 한 잔 건네신다. 토-옥 쏘는 사이다 맛이 꼭 이 마을에 사는 맛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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