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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1735 추천 수 0 2002.03.20 08: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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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작은이야기 2000년 7월호




1.
앵두가 그렁그렁 여물고 있는 장독대 너머로 키 작은 풀꽃들이 하하 호호 후후 다투어들 벙글어지 고 있다. 녀석들 앞에서 나도 따라 실없이 새살거 려본다.
헌데, 너들 오늘 웃는 낯이 쪼께 요상-타 아?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냐? 아니라면, 그 럼 내 옷차림 때문에? 어라,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 이네.
"나는 이렇게 빼 입으면 뭐 안 되니? 너희들만 예쁜 옷 입고 나는 만날 작업복만 걸치고 댕겨?" 나를 본 게 며칠 되지 않은 꽃들인지라 내 이런 말쑥한 차림이 낯설고 생경한 모양이다. 요것들아, 나이 한두 살 더 먹은 언니 꽃들한테 물어봐. 이 아저씨가 때에 따라 얼마나 멋쟁이 신사로 변신하 는지 말이야. 외출복과 작업복의 차이가 하늘 땅 차이만큼은 될 나는, 집이나 동네에서는 거지도 그런 상거지 꼬락서니가 따로 없다.
안사람의 말을 백 프로 그 대로 옮기자면 '물찌똥이 묻었더라도 걸치면 그게 다 옷인 줄 아는 이'가 바로 나란 인간이다. 불쑥 나를 찾아온 손님들은 손이며 옷이며 흙 범벅, 땟 국물 범벅인 나에게 악수 건네기조차 주저주저한 다.
'이 인간이 임의진이었다니 적잖이 실망스럽 군.' 겉모양에도 기대를 품고 온 분들은 착잡한 심 정이 드는지 날씨가 어쩌고 하면서 애먼 소리만 내 두른다.
해지고 닳은 깜장 고무신이며(그것도 짝짝 이인) 발가락 사이에 달라붙은 진흙, 삽 못이 큼지 막하게 박힌 꺼칠한 손바닥, 손톱 아래 낀 검은 때 까지 상상 속의 그 신선(神仙)이 아닌 때문인가? 그러나 외출을 할 때의 나는 전혀 다른 행색으로 둔갑한다. 목욕 재계하고 손톱 발톱 단정히 깎고, 신발도 깨끗이 빨아 신고, 밝은 빛깔의 생활 한복 을 꺼내 입는다.
시골 구석에 틀어박혀 사니께로 빠숑(?)에 관한 한 문외한인 줄 알면 무지 섭· 섭·하·지. 오늘은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새하얀 모시에 연꽃 무늬를 수놓은 윗도리를 꺼내 입었다.
내가 애지중지 해쌌는 이 옷은 혼례식 참석 때나 되어야 꺼내 입는 옷이다. 도대체 어디를 가길래 그리 옷 차림에 신경을 쓰느냐고? 그럴 만한 사정이 다 있 으니까 그렇지. 나는 오늘 새내골 사는 인호 씨와 희은 씨 사이 에 태어난, 세상 밖 구경이 두어 주밖에 되지 않은 어린 생명을 알현하러 가는 길이다.
첫인상은 평생 을 따라간다질 않던가. 처음 나를 보게 될 아기에 게 좋은 인상을 갖게 하고 싶어 나름대로 신경을 무지하게 썼다.
뿐만 아니라 아기의 이마에 성호를 긋고 뽀뽀를 하려고 이빨도 평소보다 오 분은 더 닦았을 것이다. 이태리 타월로 박박 때를 미느라 손등은 쓰라리기까지 하다. 희은 씨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오 랜 가뭄 끝에 반가운 비바람이 불어치던 날이었다. 날씨도 그렇고 해서 음악을 있는 대로 크게 틀어놓 고 흐늘거렸다.
앞으로 누워서 삼십 분, 뒤로 누워 서 삼십 분…, 그렇게 달걀 프라이처럼 퍼져서 허 송세월을 즐기고 있었다. 토독 토도독 비 떨어지는 소리가 하느님이 전화기 버튼을 누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느님도 외로우신가? 순간 약속이나 한 듯,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채 가시지 않은 흥분으 로 떨리고 있었다.
인호 씨였다.
"어젯밤, 드디어 낳았습니다요." "후-와, 그래요? 슈퍼맨입니까, 원더우먼입니 까?" "시상에 산모 안부도 안 묻고 그렇게 물어보는 거이 어딨답니까? 목사님 맞어요? 딸이구만요, 딸. 영판 이쁘게 생겼는디요. 날 닮았다고들 그라시네 요.
" "허어이, 그 무슨 불상사라요? 어떻게 생겼을 줄 훤-하네요. 그래 산모는 어떻습니까?" "초산이라 고생을 하긴 했재라우. 그래도 잘 참 읍디다야. 한번 나오시재만 그라십니까. 장모님까 지 내려 오셔서 북적북적하네요. 시원한 생맥 한잔 허고 싶은디." 전화를 끊고 나는 바로 시장통에 들러 완도산 최 상급 미역 한 다발을 사들고 병원을 찾았다. 유리 창 너머 아이는 새근새근 자느라고 나를 보지 못했 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지 만, 신생아의 집에 함부로 가는 것은 범절에 어긋 나는 일이라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인호 씨는 어 떻게 해서든 아기를 더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가 아닌가. 두 번이나 아픈 유산 경험을 한 그네들이다. 훌 쩍훌쩍 울고 다니는 희은 씨를 만나는 일이 여간 미안한 노릇이 아니었다.
해빈이 손을 잡고 걷다가 도 그네 부부를 보면 얼른 아이 손을 놓곤 했다. 아이 키우는 재미를 내비치다가 속이나 상하지 않 을까 염려가 되어. 3. 안마당에 널린 하얀 기저귀들이 행복 나라의 국 기처럼 나부꼈다. 문지방을 넘어섬과 동시에 코 안 가득 스며드는 젖비린내가 고소했다.
아아, 이 아 이 냄새. 쿰쿰한 냄새만 맡고 살다가 이 어인 극락 의 향기인고. 흠 흠 흠 젖내에 홀리며 아기의 볼따 구로 얼굴을 가져갔다.
동방 박사의 예물처럼 내어 놓은 것은 앙증스럽게 생긴 꽃신이었다. "발이 이렇게 작은데 언제 커서 신을래." 엄지손톱만한 아기의 발을 만지며 엄마는 조급한 인호 씨는 나를 쳐다보며 나도 이제 아빠랑게요, 자랑하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의 일격에 역시나 인호 씨는 웃던 얼굴을 확 구겨넣었다.
}희은 씨 얼굴은 복숭아꽃보다 빨개져 버렸고. 인호씨는 기어이 밥 한 술 뜨고 가라고 상 을 차려왔다. 미역국 세 그릇이 앉아 있었다.
참기 름을 담뿍 친 미역국, 애기 엄마가 먹고 있는 미역 국. 참말 달고 시원하고 쫄깃쫄깃한 미역국. 저녁 밥상 물리고 설거지하시는 어머니에게 내일 아침 미역국 좀 끓여 먹자고 그랬다.
어머니는, "뜬금없이 미역국은 왜야? 미역국 묵고 자프믄 언능 해빈이 동생 봐." 그러신다. "동생 보믄, 어머니가 키워주실랍니까?" "내가 늬 자식을 뭘라 키운다냐."
말은 이렇게 하셨지만, 내 얼굴에 동생은 없을 거란 단호함을 읽으셨는지 "나가 벽에 똥칠하기 전에 어여 낳으라고. 기저 귀 빨 심(힘)이라도 남아 있을 때 말여." 한 발 물러나신 말씀을 하신다. 내 흙방으로 건너가기 전 물 한잔 마시려고 부엌 에 들렀더니 국솥에 미역이 보였다.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반찬이 아니라 미역국을 먹을 수 있겠구나. 뒤따라 나오신 어머니는 나를 불러 세우시고 아주 다짐을 받으실 태세로 "하나는 못쓴다이. 애 어매 나이도 있고 헝게 언능 낳어야 써. 나중에 땅 치고 후회 말고." 그러시면서 불에 부은 미역 줄기를 주물럭거리셨 다.
"죽기 전에 해빈이 어매 미역국 한 번 더 끓여주 고 자픈 거이 이 어매 마주막 소원이란 말이여. 놈 일 부럽다만 쳐다보지 말고 순허디순헌 가시내 하 나 두어야재, 안 그랴? 시방 내 말 듣기나 허는 거 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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