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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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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 우리는 우리와 낯설어
윗잣실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장례를 모시던 날이었다. 할아버지를 모시던 아들이 작실교회를 다녔지만 하관예배는 며느리가 다니는 서울의 교회에서 주관을 하였다.
서울에서 젊은 목사 두명과 제법 많은 교우들이 내려와 장례를 주관했다. 광철씨네 집 앞을 지나 언덕길을 얼마큼 오른 곳. 볕이 환하게 잘 드는 곳이 장지였다.
10년 넘게 살며 마을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 싶으면서도 이따금씩 장례가 있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건, 마을 곳곳에 숨겨진 자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면 익숙한 마을도 다르게 보였다. 늘 다니던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마을의 모습은 새롭게 다가오곤 한다. 이젠 시골장례에서도 포크레인은 빠질 수가 없는 풍경이 되었다. 상여를 메고 산역을 하는 등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장지에서 포크레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고인을 뉘일 자리가 마련되었고 탈관을 하여 자리에 모셨다. 예법에 따라 세 번째 황대를 열고 하관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는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목사중 한 목사가 집례하였다. 지실을 만든 마을 사람들이 저만치 나무 그늘로 물러났고, 유족들과 교인들이 산소 주변으로 둘러서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중 설교를 마치고 취토를 하는 시간이었다. 취토를 위해 세 번째 횡대를 덮으라고 집례 목사가 말했을 때,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이것부터 넣어야 되지 않냐며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사각모양으로 된 붉고 푸른 빛깔의 두 개의 천. 뭐라 부르는 진 몰라도 이생을 마감하고 명복을 비는 의미로 관속에 넣는 작은 천이었다. 대개는 장손이 나와 횡대 위에 예를 갖춰 받아들고 절을 올린 후 관속에 넣어 드렸다.
마지막 횡대를 닫기 전 넣어야 하는데 횡대를 덮으라니, 안 된다며 나선 이는 이충근씨. 작실교회에서 집사직을 받은 노인이었다.
그러는 법이 어디있냐며, 이것부터 넣어야지 그냥 닫으면 어쩌냐고 이충근씨의 언성은 높아지고 주변 분위기가 뒤숭숭해졌지만 젊은 목사의 태도는 단호했다.
"안됩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웅성웅성 소란이 일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목사의 태도가 너무도 분명하여 얼떨결에 누군가 횡대를 덮었고, 모두 덮인 횡대 위로 식구들이 돌아가며 흙을 뿌렸다. 못마땅해하는 주변 표정들을 무시한 채 하관에배는 그렇게 끝났다.
예배를 마치고 서울 교인들이 산에서 내려가자 마을 분들이 흙을 털어 횡대를 열었고, 다시 예를 갖춰 두 개의 천을 넣었다.
내려오는 길, 앞서가건 교우들을 스쳐가게 되었는데 장례를 집례한 목사가 주변 교인들에게 아까 상황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기독교식이야, 사람들이 뭘 모르고, 우상을 섬기려는 거잖아?"
교인들만 아니라면 나도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도대체 무엇이 기독교식이란 말인가?
예수님이나 나사로처럼 세마포에 시신을 싸서 동굴 안에 넣는 것이 기독교식일까? 하관예배 내내 당연한 듯 받아 들였던 순서나 형식을 놔두고 왜 하필 그 한 부분만 '우상숭배'라 여겼을까.
신앙이란 이름으로 문화의 풍습 위에 군림하려는 어색함과 굳어짐.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그렇게 낯설어야 하는 것일까?
윗잣실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장례를 모시던 날이었다. 할아버지를 모시던 아들이 작실교회를 다녔지만 하관예배는 며느리가 다니는 서울의 교회에서 주관을 하였다.
서울에서 젊은 목사 두명과 제법 많은 교우들이 내려와 장례를 주관했다. 광철씨네 집 앞을 지나 언덕길을 얼마큼 오른 곳. 볕이 환하게 잘 드는 곳이 장지였다.
10년 넘게 살며 마을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 싶으면서도 이따금씩 장례가 있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건, 마을 곳곳에 숨겨진 자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면 익숙한 마을도 다르게 보였다. 늘 다니던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마을의 모습은 새롭게 다가오곤 한다. 이젠 시골장례에서도 포크레인은 빠질 수가 없는 풍경이 되었다. 상여를 메고 산역을 하는 등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장지에서 포크레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고인을 뉘일 자리가 마련되었고 탈관을 하여 자리에 모셨다. 예법에 따라 세 번째 황대를 열고 하관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는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목사중 한 목사가 집례하였다. 지실을 만든 마을 사람들이 저만치 나무 그늘로 물러났고, 유족들과 교인들이 산소 주변으로 둘러서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중 설교를 마치고 취토를 하는 시간이었다. 취토를 위해 세 번째 횡대를 덮으라고 집례 목사가 말했을 때,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이것부터 넣어야 되지 않냐며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사각모양으로 된 붉고 푸른 빛깔의 두 개의 천. 뭐라 부르는 진 몰라도 이생을 마감하고 명복을 비는 의미로 관속에 넣는 작은 천이었다. 대개는 장손이 나와 횡대 위에 예를 갖춰 받아들고 절을 올린 후 관속에 넣어 드렸다.
마지막 횡대를 닫기 전 넣어야 하는데 횡대를 덮으라니, 안 된다며 나선 이는 이충근씨. 작실교회에서 집사직을 받은 노인이었다.
그러는 법이 어디있냐며, 이것부터 넣어야지 그냥 닫으면 어쩌냐고 이충근씨의 언성은 높아지고 주변 분위기가 뒤숭숭해졌지만 젊은 목사의 태도는 단호했다.
"안됩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웅성웅성 소란이 일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목사의 태도가 너무도 분명하여 얼떨결에 누군가 횡대를 덮었고, 모두 덮인 횡대 위로 식구들이 돌아가며 흙을 뿌렸다. 못마땅해하는 주변 표정들을 무시한 채 하관에배는 그렇게 끝났다.
예배를 마치고 서울 교인들이 산에서 내려가자 마을 분들이 흙을 털어 횡대를 열었고, 다시 예를 갖춰 두 개의 천을 넣었다.
내려오는 길, 앞서가건 교우들을 스쳐가게 되었는데 장례를 집례한 목사가 주변 교인들에게 아까 상황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기독교식이야, 사람들이 뭘 모르고, 우상을 섬기려는 거잖아?"
교인들만 아니라면 나도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도대체 무엇이 기독교식이란 말인가?
예수님이나 나사로처럼 세마포에 시신을 싸서 동굴 안에 넣는 것이 기독교식일까? 하관예배 내내 당연한 듯 받아 들였던 순서나 형식을 놔두고 왜 하필 그 한 부분만 '우상숭배'라 여겼을까.
신앙이란 이름으로 문화의 풍습 위에 군림하려는 어색함과 굳어짐.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그렇게 낯설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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