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낯설어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866 추천 수 0 2002.03.25 22:32:59
.........
1844. 우리는 우리와 낯설어

윗잣실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장례를 모시던 날이었다. 할아버지를 모시던 아들이 작실교회를 다녔지만 하관예배는 며느리가 다니는 서울의 교회에서 주관을 하였다.
서울에서 젊은 목사 두명과 제법 많은 교우들이 내려와 장례를 주관했다. 광철씨네 집 앞을 지나 언덕길을 얼마큼 오른 곳. 볕이 환하게 잘 드는 곳이 장지였다.
10년 넘게 살며 마을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 싶으면서도 이따금씩 장례가 있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건, 마을 곳곳에 숨겨진 자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면 익숙한 마을도 다르게 보였다. 늘 다니던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마을의 모습은 새롭게 다가오곤 한다. 이젠 시골장례에서도 포크레인은 빠질 수가 없는 풍경이 되었다. 상여를 메고 산역을 하는 등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장지에서 포크레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고인을 뉘일 자리가 마련되었고 탈관을 하여 자리에 모셨다. 예법에 따라 세 번째 황대를 열고 하관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는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목사중 한 목사가 집례하였다. 지실을 만든 마을 사람들이 저만치 나무 그늘로 물러났고, 유족들과 교인들이 산소 주변으로 둘러서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중 설교를 마치고 취토를 하는 시간이었다. 취토를 위해 세 번째 횡대를 덮으라고 집례 목사가 말했을 때,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이것부터 넣어야 되지 않냐며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사각모양으로 된 붉고 푸른 빛깔의 두 개의 천. 뭐라 부르는 진 몰라도 이생을 마감하고 명복을 비는 의미로 관속에 넣는 작은 천이었다. 대개는 장손이 나와 횡대 위에 예를 갖춰 받아들고 절을 올린 후 관속에 넣어 드렸다.
마지막 횡대를 닫기 전 넣어야 하는데 횡대를 덮으라니, 안 된다며 나선 이는 이충근씨. 작실교회에서 집사직을 받은 노인이었다.
그러는 법이 어디있냐며, 이것부터 넣어야지 그냥 닫으면 어쩌냐고 이충근씨의 언성은 높아지고 주변 분위기가 뒤숭숭해졌지만 젊은 목사의 태도는 단호했다.
"안됩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웅성웅성 소란이 일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목사의 태도가 너무도 분명하여 얼떨결에 누군가 횡대를 덮었고, 모두 덮인 횡대 위로 식구들이 돌아가며 흙을 뿌렸다. 못마땅해하는 주변 표정들을 무시한 채 하관에배는 그렇게 끝났다.
예배를 마치고 서울 교인들이 산에서 내려가자 마을 분들이 흙을 털어 횡대를 열었고, 다시 예를 갖춰 두 개의 천을 넣었다.
내려오는 길, 앞서가건 교우들을 스쳐가게 되었는데 장례를 집례한 목사가 주변 교인들에게 아까 상황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기독교식이야, 사람들이 뭘 모르고, 우상을 섬기려는 거잖아?"
교인들만 아니라면 나도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도대체 무엇이 기독교식이란 말인가?
예수님이나 나사로처럼 세마포에 시신을 싸서 동굴 안에 넣는 것이 기독교식일까? 하관예배 내내 당연한 듯 받아 들였던 순서나 형식을 놔두고 왜 하필 그 한 부분만 '우상숭배'라 여겼을까.
신앙이란 이름으로 문화의 풍습 위에 군림하려는 어색함과 굳어짐.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그렇게 낯설어야 하는 것일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122 김남준 중심이신 그리스도 김남준 2014-01-01 859
8121 한희철 항아버지와 세발자전거 한희철 2002-05-22 860
8120 김남준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김남준 2002-07-29 861
8119 한희철 까만 종이 한희철 2002-07-30 861
8118 김남준 대장장이들의 지혜 김남준 2002-09-04 861
8117 한희철 파리의 비극 한희철 2002-06-15 862
8116 김남준 분노는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다. 김남준 2002-11-08 862
8115 홍승표 [백남천] 들불놓는 사람들 홍승표 2002-11-18 862
8114 한희철 1906. 미국여행 한희철 2002-05-09 863
8113 한희철 20리길을 걸어온 효준이 한희철 2002-06-15 863
8112 김남준 기도 없으면 김남준 2002-07-29 863
8111 홍승표 [이윤림] 나무 홍승표 2002-12-03 863
8110 김남준 이어져야 할 고난 김남준 2003-07-19 863
8109 이현주 지금까지 말이 많았다. 이현주 2002-06-24 864
8108 한희철 부디 한희철 2013-11-01 864
8107 김남준 용서란 무엇인가? 김남준 2014-10-01 864
8106 이현주 나무, 나무, 나무들 [1] 이현주 2003-05-21 865
8105 이현주 비가 전하는 말 이현주 2014-03-27 865
» 한희철 우리는 우리와 낯설어 한희철 2002-03-25 866
8103 홍승표 [오규원] 그대에게 홍승표 2002-11-08 866
8102 한희철 겨울나무 한희철 2013-12-01 866
8101 한희철 귀한 정성 한희철 2002-03-23 867
8100 이현주 뒷감당 [1] 이현주 2002-04-11 867
8099 한희철 뒤주 밑이 긁히면 한희철 2002-06-17 868
8098 이현주 거짓말 이현주 2002-06-24 868
8097 김남준 고난의 신학교에서 김남준 2002-07-29 868
8096 이현주 본보기 이현주 2002-08-04 868
8095 김남준 조국교회의 기여 김남준 2002-08-20 868
8094 홍승표 [황순원] 숫돌 홍승표 2003-01-13 868
8093 이현주 고구마 이현주 2003-03-17 868
8092 이현주 얹혀 있구나 이현주 2003-06-02 868
8091 한희철 멀리 한희철 2013-11-01 868
8090 이현주 사랑하는 사람아 이현주 2014-02-09 868
8089 한희철 좋은이웃 한희철 2002-04-24 869
8088 한희철 2102 사택을 이사하다 한희철 2004-01-09 869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