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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썰매장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838 추천 수 0 2002.04.18 13: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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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 눈썰매장

"목사님, 저희 집으로 건너 오세요."
섬뜰 박종관씨의 전화였다.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였다는 얘기였다. 그런 자리에 교회 목사를 생각하고 부르는 것이 여간 고맙지를 않다. 읽던 책을 덮고 집을 나섰다.
박종관씨네 문 앞에는 벗어놓은 신발이 제법이다. 옹기종기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신발들이 정겹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좁은 부엌안에는 벌써 예닐곱 명은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여 앉으세요. 개울에서 고기를 좀 잡았어요."
얼른 수저를 내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벼타작 끝나고 잠시 난 틈에 고기를 잡은 모양이었다. 시골엔 아직 그런 여유가 남아 있다. 상에 같이 앉아 매운탕을 먹었다. 갈지 않고 그냥 넣은 미꾸라지와 구구리에 마음이 주저스러웠지만 티내지 말자 하며 머리까지 다 씹어 먹었다. 콧잔등에 땀이 송송 맺히도록 매운탕은 매웠다.
"아예 저녁으로 드세요."
자꾸 국물을 떠 붓곤 하던 박종관씨가 이번엔 아예 밥통을 가져왔다. 편하고 고맙고 좋은 마음들이다.
"그런데 변완수씨가 안보이네요. 어디 가셨어요?"
늘 같이 어울리는 변완수씨가 보이지 않아 여쭸더니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경운기로 논을 갈아요. 거반 마칠 때가 되었을텐데."
추수 끝난 논을 서둘러 갈다니, 궁금해 다시 물었더니
"아이들 썰매장 맹긴대요. 왜 지난 핸 실패했쟎아요. 올핸 제대로 맹길어 보겠대요."
맞다. 지난해는 실패했었다. 동네 아이들을 위해 썰매장을 만들긴 만들었는데, 얼음이 쉽게 주저 앉고 말아 제대로 썰매를 타보질 못했다. 논을 갈고 트랙터로 삶은 뒤에 물을 받아야 얼음이 제대로 언다는 것을 지난해에는 몰랐던 것이었다. 어디선가 요령을 전해들은 변완수씨는 벌써 동네 아이들을 위해 논을 갈아 두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동네 아이들은 올 겨울 신나게 얼음을 지치리라.
매서운 겨울날이 오히려 반가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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