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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한 병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055 추천 수 0 2002.04.18 13: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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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참기름 한 병  

어둘녘 인우재에서 내려오다 이서흠 성도님을 만났다. 담배 건조실 앞 작은 밭에서 배추를 돌보는 중이었다. 이제 밭에 남은 것은 두어 고랑의 배추 뿐이었다.
"목사님 잠깐 즈히 집에 들렀다 가세요."
아무도 없는 집은 당연히 어두웠고, 전기불을 켜서야 밝아졌다. 혼자 사는 분들의 가장 큰 어려움과 허전함은 언제라도 빈집에 혼자 불을 켜야 하는 그 순간이 아닐까.
누군가 식구가 있는 집에 들어서는 것과, 불 밝혀있는 집에 들어서는 것과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들어서는 것이 어찌 사소한 차이겠는가. 부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도 약하신데다 혼자 살아가는 삶, 웃으며 얘길 나누지만 마음은 안쓰러웠다.
농사 잘 지었느냐 여쭙자
"글세 올 겨울 날 기름값이락두 장만할려구 열심히 해긴 했는데, 기름값은 자꾸 올라가구, 그것두 잘 안되겠어요."하신다.
기름값, 겨울을 그냥 날수는 없다. 아끼고 참아도 최소한의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농촌에서 '기름값'이란 말이 갖는 쉽지 않은 무게.
이서흠 성도님은 사진을 한 장 꺼내 오셨다. 돌아가신 박민하 성도님, 남편의 사진으로 한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이것 줌 크게 뽑을 수 읍을까요?"
노인들 사진을 교회서 찍어드린 적이 있고 박민하 성도님도 그때 찍었는데, 자녀중에 누가 아버지 사진을 가져 갔다는 것이다. 사진마저 없으니 더욱 허전함이 크신 모양이다.
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낮은 목소리의 기도
주님이 크게 들으시기를, 자리에서 일어날 때 이서흠 성도님이 무엇인가를 전한다. 참기름 한병이었다.
"진작부터 드릴라 했는데 시간이 없었어유." 목사에게 베푸는 지극한 사랑이시다. 그래, 우리가 사랑 잃지 않는다면, 끝내 잃지 않는다면, 그러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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