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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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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 유익한 강의
협성대 신학대학원에 이번 가을학기 강의를 부탁 받았다. <농촌 목회와 영성>이란 과목으로, 처음으로 신설되는 과목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제일 먼저 나오게 되는 목회지가 대부분은 농촌, 농촌에 대해 공부하고 나온다는 것은 진작부터 필요한 일이었으나 여태 그런 과목이 없었던 터였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과목, 그런 과목을 한 학기나 맡기에는 내가 적합하지 않다 여겨져 고사 했으나 결국은 맡게 되었다. 농촌 목회의 경험과 생각들을 편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농촌이란 무엇인가?' '작은 것의 소중함' '포기해야 할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 '좋은 학교' '견디기와 사랑하기' '단강에서 한 일과 하지 못한 일' '함부로 목사되지 않기' '다른 것과 틀린 것'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선택시간이었지만 43명의 학생들이 강의를 신청했고, 두어 명 청강생도 있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교실 분위기는 진지하기도 했고, 정겹기도 했다.
새벽같이 길을 나서 먼길을 가야 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어떤 땐 만남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한번에 3시간,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번은 사랑의 교회에서 농촌 선교사로 파송 받은 이병철 목사와 동부연회 웹팀장을 맡은 최헌영 목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고, 한번은 감신대와 서울농대를 나온 정원기 목사를 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유익했다. 강의를 맡으며 꼭 갖고 싶었던 시간이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성공한 농사꾼이 아닌 평범한 농사꾼의 진솔한 고백을 듣는 일이야 말로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일 것이란 생각이 있었 다.
벼타작이 끝나고 잠깐 삐줌한 틈을 타서 마을사람 4명과 함께 학교를 찾았다. 병철씨와 이상근 권사님은 양복차림이었다. 오히려 나는 편한 옷차림, 아내가 보더니 병철씨가 목사 같고 내가 농사꾼 같다고 한다.
대학원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의 이야기 속엔 농촌의 실상이 그대로 담겼고, 과장됨 없는 그런 시간이 참 좋게 여겨졌다. 12대째 300여년 단강을 지키며 살아 왔다는 김진택 씨가 당신 뒤를 이어 고향을 지킬 자식이 없어 안타깝다 했을 땐 듣는 마음들이 숙연해졌다.
강의를 마치며 병철씨한테 '칠갑산'노래를 청했더니 잇몸이 아프다며 사양을 했고, 그 구수한 노래를 듣지 못하는게 영 아쉬웠는데 뜻밖에도 김진택씨가 '흙에 살리라'는 노래를 정말 멋드러지게 불러 주었다. '흙에 살리라'는 노래는 그날 강의 내용에 걸맞는, 아주 잘 어울리는 마감이었다.
뜨거운 박수가 한참동안 이어졌다.
협성대 신학대학원에 이번 가을학기 강의를 부탁 받았다. <농촌 목회와 영성>이란 과목으로, 처음으로 신설되는 과목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제일 먼저 나오게 되는 목회지가 대부분은 농촌, 농촌에 대해 공부하고 나온다는 것은 진작부터 필요한 일이었으나 여태 그런 과목이 없었던 터였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과목, 그런 과목을 한 학기나 맡기에는 내가 적합하지 않다 여겨져 고사 했으나 결국은 맡게 되었다. 농촌 목회의 경험과 생각들을 편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농촌이란 무엇인가?' '작은 것의 소중함' '포기해야 할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 '좋은 학교' '견디기와 사랑하기' '단강에서 한 일과 하지 못한 일' '함부로 목사되지 않기' '다른 것과 틀린 것'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선택시간이었지만 43명의 학생들이 강의를 신청했고, 두어 명 청강생도 있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교실 분위기는 진지하기도 했고, 정겹기도 했다.
새벽같이 길을 나서 먼길을 가야 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어떤 땐 만남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한번에 3시간,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번은 사랑의 교회에서 농촌 선교사로 파송 받은 이병철 목사와 동부연회 웹팀장을 맡은 최헌영 목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고, 한번은 감신대와 서울농대를 나온 정원기 목사를 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유익했다. 강의를 맡으며 꼭 갖고 싶었던 시간이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성공한 농사꾼이 아닌 평범한 농사꾼의 진솔한 고백을 듣는 일이야 말로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일 것이란 생각이 있었 다.
벼타작이 끝나고 잠깐 삐줌한 틈을 타서 마을사람 4명과 함께 학교를 찾았다. 병철씨와 이상근 권사님은 양복차림이었다. 오히려 나는 편한 옷차림, 아내가 보더니 병철씨가 목사 같고 내가 농사꾼 같다고 한다.
대학원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의 이야기 속엔 농촌의 실상이 그대로 담겼고, 과장됨 없는 그런 시간이 참 좋게 여겨졌다. 12대째 300여년 단강을 지키며 살아 왔다는 김진택 씨가 당신 뒤를 이어 고향을 지킬 자식이 없어 안타깝다 했을 땐 듣는 마음들이 숙연해졌다.
강의를 마치며 병철씨한테 '칠갑산'노래를 청했더니 잇몸이 아프다며 사양을 했고, 그 구수한 노래를 듣지 못하는게 영 아쉬웠는데 뜻밖에도 김진택씨가 '흙에 살리라'는 노래를 정말 멋드러지게 불러 주었다. '흙에 살리라'는 노래는 그날 강의 내용에 걸맞는, 아주 잘 어울리는 마감이었다.
뜨거운 박수가 한참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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