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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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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미국여행
미국여행을 잘 다녀왔다.
굳이 '선교'라는 말을 여행이란 말 앞에 쓰지 않은 것은 그냥 자연스럽고 싶기 때문이다. '선교'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온갖 부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보면 그냥 자연스레 여행이라는 말을 택하고 싶다.
샌디에고, 오클랜드, 포트랜드를 다니며 예배를 드렸다.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일임을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목회자란 무엇보다도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7년 전 다녀온 교회에서 다시 한번 예배를 같이 드리자는 청이 있었던 것은 지난 해, 그러나 비자 신청에서 거절당했다. 왜 가느냐, 얼마쯤 머무를 거냐 한 마디 묻지를 않고 '노' 했다.
미국을 못 가서가 아니라 그렇게 거절하는 태도에 아쉬움과 실망이 컸다. 거만함으로 여겨졌다. 사람을 심사해서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몹시 거북살스러웠다.
다시 한번 예배를 드리자는 청이 있었고, 이번엔 비자 발급을 받았다. 같이 염려해 준 분들의 덕이었다. 뜻밖에도 10년 유효기간의 비자를 발급 받았다.
주님의 선한 배려라 여겨졌던 것은 무엇보다도 아내를 향한 마음 때문이었다. 작은 시골교회에서 지내온 만 14년,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단강에서 따로 안식년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래도 말씀을 전하며 함께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수고한 아내에게 작은 위로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함께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나와는 달리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왜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없겠는가만,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같이 안가겠다는 말을 농담으로 생각하는 내게 자기가 꼭 같이 가야 하는 이유를 세가지만 대보라고 아내가 말했다.
나는 두가지를 댔다. 꼭 가야 하기 때문에, 안가면 안되기 때문에, 그만큼 나는 동행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5가지를 댔다.
5가지나! 그만큼 생각이 많았다는 뜻이겠다.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겨야 하는 죄송함.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 그런 것은 그래도 감내 할 만 하다 싶었다. 5번째 이유를 댔을 때, 그때 난 어떡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어떡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나직하게 말했다.
"동네에 젊은 부인들이 있는데, 내가 다녀오면 미안해서 그들을 잘 못 보게 될 것 같아."
농사지으며 사는 젊은 부인들. 그들이 참고 견디며 사는 삶이 얼만데, 그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기게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당장 나가서 "예수 믿으세요!" 외치지는 않아도, 전도의 문을 아예 닫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나 혼자 가면 못 올지도 모르고 안 올지도 모른다며 농으로 마음을 가렸지만, 아내의 다섯 개나 되는 이유를, 특히 다섯 번째 이유를 듣는 마음은 뭉클했다. 같이 못 가는 아쉬움만큼이나 고마움 마음이 이내 마음 속을 채웠다.
혼자 떠나는 여행.
그래, 한번 혼자 뚝 떨어져서 함께 하는 시간의 의미를 새겨보자. 순간순간 동행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해 보자,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생각해 보자.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 엘에이에서 샌디에고, 샌디에고에서 센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크랜드, 오크랜드에서 포트랜드, 포트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 보름간의 일정이지만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몇 마디밖에 모르는 왕초보 수준의 영어 실력으로 그 먼 여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수없이 바꿔 타야 하는 비행기. 어느 순간 길이 막히면 어쩌나. 그런 염려 속에서도 그런 나를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을 즐겨보자.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주변 분들이 잘 다녀오라며 따듯하게 격려해 주었다. 늘 고마운 분들. 그 중에서도 섬뜰의 박종관 아저씨가 가지고 온 봉투. 마을분 5명이 만원씩을 모아 5만원이 든 봉투를 가져와 전해 주셨다. 박종관, 변완수, 최태준, 변학수, 김재용, 교회는 안 다니지만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길 잃어버렸을 때 택시 탈 때 쓰라며 전하신 정성 또한 참으로 따뜻한 마음이었다. 때로 외로울 때가 아주 없진 않지만 너무나 큰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떠나기 전부터 흠뻑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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