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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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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여행
마을 분들과 다시 한번 여행을 다녀왔다. 3년째 이어지는 여행이다. 박종관, 변완수, 변학수, 김재용, 최태준, 변의수, 백광현씨 나까지 모두 8명이 길을 나섰다.
질리도록 이어진 가뭄으로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행히 내린 비. 서둘러 나머지 모내기를 마치고는 길을 나섰다.
태백에 있는 석탄박물관과 포항에 있는 제철소, 장지곶에 있는 등대 박물관, 대구를 거쳐 돌아오기로 한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격의 없이 마을 분들과 어울리는 시간, 홀가분하게 길을 나섰다. 태백을 향해 가다가 중간쯤에서 어정쩡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늘 일하며 새참을 들었던 습관이 있는지라 아침 11시쯤이 되니 시장들 했던 것이었다.
석탄박물관을 시간 때문에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포항제철소에 4시까지 도착을 해야 제철소를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해안 바닷가로 난 도로를 따라 줄곧 남으로 향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무리였다. 포항에 4시까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철소는 다음날 아침 일찍 들르기로 하고, 중간에서 또 참을 먹었다.
제철소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천상 포항 근처에 숙소를 정해야 했는데 여행에 관한 정보를 전해준 작은 형이 감포를 추천해 주었다.
저녁으로 회를 먹을 수 있고, 알맞은 숙소도 있을 거란 얘기였다. 하루 일정을 그렇게 잡고 계속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데 다시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침 회사에서 출장을 나와 밖에 있는데, 형도 감포를 향해 오고 있는 중이라 했다. 땅거미가 깔리는 저녁 무렵 우리는 감포에서 만났다. 형은 식당 양쪽으로 대형 수족관이 있어 바닷속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어느 연속극인가를 그곳에서 촬영했다는 사진과 안내문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들은 이야기대로 수족관이 있는 식당 분위기는 특이했다. 식당 양쪽으로 있는 대형수족관에는 쉴 새 없이 고기들이 떼를 지어 오고 가고 있었다.
나중에 식사를 하며 보니 고기가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구분이 잘 안되었다.
저녁은 형이 대접해 주었다. 순천에서 서너시간을 달려 왔다니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가까이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을 안내해 준 뒤 형은 다시 직장이 있는 광주로 떠났다. 또 서너시간 가야 할테니 늦은 밤에 도착할 일이었다. 바닷가 쪽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피곤할 터면서도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포항제철소를 아침 9시부터 둘러볼 수 있다하여 가는 길에 장기곶에 들리기로 했다. 우리나라 지도로 보면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민족의 기를 죽이기 위해 '호랑이 꼬리'를 '토끼 꼬리'라 바꿔 부른 것이 일제라 한다.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지명은 '호미곶'이었다. 분명 '虎尾'이리라. 호랑이 꼬리를 토끼 꼬리라 불렀다니, 한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의 꿍꿍이가 얼마나 철저한 것이었는지를, 우리가 철저해지지 않으면 그 때를 완전히 벗기가 얼마나 여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넓고 큰 포항제철을 둘러본 뒤에 경주를 거쳐 대구로 갔다. 동대구전화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큰형이 국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전화가 어떤 경로를 거쳐 연결이 되는지 전화국 내부를 구경했다. 실핏줄 같이 복잡한 선과 선들, 우리야 간단하고 편하게 전화를 사용하지만 그 일이 있기 위해서는 이런 복잡함이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잘 대접받은 뒤 팔공산에 올랐다가 단강으로 돌아왔다.
1박2일간의 조촐한 나들이. 누군가는 대번 '전도'와 연결시켜 '효과 없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굳이 그런 의도가 없으면 어떠라.
함께 사는 마을 어른들과 떠나는 홀가분한 여행,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일인걸. 2001.7.15
마을 분들과 다시 한번 여행을 다녀왔다. 3년째 이어지는 여행이다. 박종관, 변완수, 변학수, 김재용, 최태준, 변의수, 백광현씨 나까지 모두 8명이 길을 나섰다.
질리도록 이어진 가뭄으로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행히 내린 비. 서둘러 나머지 모내기를 마치고는 길을 나섰다.
태백에 있는 석탄박물관과 포항에 있는 제철소, 장지곶에 있는 등대 박물관, 대구를 거쳐 돌아오기로 한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격의 없이 마을 분들과 어울리는 시간, 홀가분하게 길을 나섰다. 태백을 향해 가다가 중간쯤에서 어정쩡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늘 일하며 새참을 들었던 습관이 있는지라 아침 11시쯤이 되니 시장들 했던 것이었다.
석탄박물관을 시간 때문에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포항제철소에 4시까지 도착을 해야 제철소를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해안 바닷가로 난 도로를 따라 줄곧 남으로 향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무리였다. 포항에 4시까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철소는 다음날 아침 일찍 들르기로 하고, 중간에서 또 참을 먹었다.
제철소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천상 포항 근처에 숙소를 정해야 했는데 여행에 관한 정보를 전해준 작은 형이 감포를 추천해 주었다.
저녁으로 회를 먹을 수 있고, 알맞은 숙소도 있을 거란 얘기였다. 하루 일정을 그렇게 잡고 계속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데 다시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침 회사에서 출장을 나와 밖에 있는데, 형도 감포를 향해 오고 있는 중이라 했다. 땅거미가 깔리는 저녁 무렵 우리는 감포에서 만났다. 형은 식당 양쪽으로 대형 수족관이 있어 바닷속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어느 연속극인가를 그곳에서 촬영했다는 사진과 안내문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들은 이야기대로 수족관이 있는 식당 분위기는 특이했다. 식당 양쪽으로 있는 대형수족관에는 쉴 새 없이 고기들이 떼를 지어 오고 가고 있었다.
나중에 식사를 하며 보니 고기가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구분이 잘 안되었다.
저녁은 형이 대접해 주었다. 순천에서 서너시간을 달려 왔다니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가까이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을 안내해 준 뒤 형은 다시 직장이 있는 광주로 떠났다. 또 서너시간 가야 할테니 늦은 밤에 도착할 일이었다. 바닷가 쪽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피곤할 터면서도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포항제철소를 아침 9시부터 둘러볼 수 있다하여 가는 길에 장기곶에 들리기로 했다. 우리나라 지도로 보면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민족의 기를 죽이기 위해 '호랑이 꼬리'를 '토끼 꼬리'라 바꿔 부른 것이 일제라 한다.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지명은 '호미곶'이었다. 분명 '虎尾'이리라. 호랑이 꼬리를 토끼 꼬리라 불렀다니, 한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의 꿍꿍이가 얼마나 철저한 것이었는지를, 우리가 철저해지지 않으면 그 때를 완전히 벗기가 얼마나 여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넓고 큰 포항제철을 둘러본 뒤에 경주를 거쳐 대구로 갔다. 동대구전화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큰형이 국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전화가 어떤 경로를 거쳐 연결이 되는지 전화국 내부를 구경했다. 실핏줄 같이 복잡한 선과 선들, 우리야 간단하고 편하게 전화를 사용하지만 그 일이 있기 위해서는 이런 복잡함이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잘 대접받은 뒤 팔공산에 올랐다가 단강으로 돌아왔다.
1박2일간의 조촐한 나들이. 누군가는 대번 '전도'와 연결시켜 '효과 없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굳이 그런 의도가 없으면 어떠라.
함께 사는 마을 어른들과 떠나는 홀가분한 여행,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일인걸. 200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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