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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리길을 걸어온 효준이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863 추천 수 0 2002.06.15 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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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20리길을 걸어온 효준이

  마을에 궂은 일이 있던 날 저녁이었다. 모두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어수선하게 하루를 보냈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할 때 일 마치고 돌아오던 사람들이 방앗간 앞에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멀리서 들려온 불확실한 소식들을 나누며 걱정을 하고 있는데 허둥지둥 효준이 엄마가 달려왔다.
  "왜? 무슨 일 있어?"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물었더니
  "우리 효준이 못봤어요?" 효준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어느새 어둠이 다 내렸는데 효준이가 없다니, 효준이 어머니는 다시 집 쪽으로 화급하게 달려갔다.
  워낙 마을에 생긴 궂은 일이 큰일이라 효준이에 대한 걱정은 모두들 잠깐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자꾸 효준이에게로 갔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어둠이 다 내리도록 집에 오지 않았다니 어디를 간 것인가. 더운 여름철이니 혼자 물놀이를 하러 간 것은 아닐까? 부론으로 학원에 갔다는데 혹시 지나가는 차를 잘 못 얻어 탄 것은 아닐까. 마을에 생긴 궂은 일 때문인지 생각도 불길한 생각만 들었다.
  그러고 있는데 저 아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효준이였다.
  터덜터덜, 어깨가 축 늘어진 효준이가 다 내린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어깨를 가로질러 가방을 둘러매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어쩐 일이니?"
"어디서, 왜?"
"괜찮니?"
  어른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효준이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알고 보니 녀석은 부론 에서부터 걸어오는 중이었다.
  차비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차비가 없어 부론에서 부터 20리길을, 그것도 어둠이 내린 길을 혼자서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녀석은 차비로 준 돈을 사탕이나 과자, 혹은 전자오락을 하는데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효준이는 울먹울먹하며 집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그 어린녀석이 20리 어둔 길을 걸어 집에 왔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황당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어수선한 밤이었다.  20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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