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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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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숨 쉬는 이유
을택씨 상춘씨 하고 부르다가 나는 수박씨 참외씨 옥수수씨 호박씨 이렇게 또 당신의 이름을 달착지근하게 불러본다. 씨앗은 먼 훗날의 재회 약속. 그래서 수채통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뱉어버릴 수 없음이다. 당신은 어디다 씨앗을 뱉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흙 마당이나 밭에다가, 아니면 들길을 걷다가 적당한 땅에 툭 뱉어낸다. 새들이 물어가고 남은 씨들은 더러 갸륵하게 뿌리를 내리기도 하더라.
세상에서 가장 빨간 속살을 지닌 수박과 노란 리본을 단 원피스를 걸쳐 입은 참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계절 연속극. 이맘때쯤엔 냉장고에 아껴둔, 얼음이 살짝 언 다디단 식혜 한 그릇도 일미 중의 일미렷다. 알사탕처럼 둥근 달빛 아래 모여 식혜 맛을 즐기는 조선 사람들, 진짜 “으리집 으리음료 신토부으리…” 달달한 맛은 어쩔 땐 당신의 입술보다도 더 달달달.
요새 세상은 단물이 쏙 빠지고 쓴물과 짠물로 고약한 형편이구나. 세월호 아이들이 무지개 나라로 떠난 이후 설탕물 대신 쓰디쓰고 짜디짠 맛들 천지로다. 죄책감이 들어서도 단물을 멀리하게 되고…. 바늘을 찔러봐라 꿈쩍이나 하나 그토록 차갑던 철의 여인이 눈물까지 보이고, 미개한 국민을 지도 편달 중인 개화된 누구께옵서도 짜디짠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5·18을 맞아 메이홀에선 한겨레 만평의 만화가 박재동 샘의 시사만화를 총망라 전시 중이다. 전시 제목을 내가 잡았는데 ‘숨 쉬는 이유’라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눈, 따뜻한 행동, 손에 손 맞잡은 다디단 인연들 덕분에 이나마 숨 쉬고 사는 것이리라.
둘러앉아 수박화채를 나누어 먹고, 노란 리본 참외도 깎아먹고, 항아리 얼음 식혜로 입가심하면서 단맛의 세상을 즐기고 싶어라. 유채꽃밭 아카시아 꽃산을 헤집고 다니는 꿀벌처럼 단 거 없인 못살지 못살아. 다디단 사람, 당신의 이름에 씨자를 붙여 마치 씨앗인 것처럼 상냥하게 불러주고 싶어라. 아무개씨, 항상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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