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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870 추천 수 0 2002.07.30 16: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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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어떤 하루

자다 눈을 뜨니 캄캄한 밤, 창 밖 불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방안 벽에 세모난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4시 15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히터가 고장이 났는지 이불 밖에는 온기가 없다. 전기장판을 켠 이불 속이 따뜻하여 잠깐 웅크리고 있다가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바친다. 오늘은 그냥 곧장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기도 끝에 이르러 같은 말을 나도 모르게 반복한다. 지하에 있다고 설마 주님이 모르시겠 는가만 마음이 담겨 나온 그 말을 다른 말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주님 은 아시리라.
화장실을 다녀온 후 컴퓨터를 켠다. 기계에 영 서투르면서도 어느새 컴퓨터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있다. 밤새 온 메일을 확인한다. 곧 이곳으로 떠나게 가족이나 교회 일로 급한 연락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특별한 연락이 없으니 일단 다행, 컴퓨터를 끈다.
새로 나온 '표준새번역 개정판' 성경을 펼쳐든다. 컴퓨터를 켤 때 순간적으로 지났던 생각, 성경을 읽는 것과 순서가 바뀌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다시 한 번 지나간다. 그건 단지 시간 상의 순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순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성경, 우리말로 잘 번역된 성경이다.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공감한 대로 내년 초 인사구역회가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면 성경부터 바꾸고 싶다.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개역성경 대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하는 것을 이곳에서 시작하는 목회의 첫 번 째 일로 삼고 싶다.
토요성서연구 시간에 마가복음을 공부하면 어떨까 싶어 마가복음 1장을 찬찬히 읽었다. 새로운 성경에 새롭게 밑줄을 긋는다. 마침 20일, 잠언 20장을 읽은 뒤 예레미야 애가를 읽었다. 눈물의 선지자, 문득 예레미야의 마음이 궁금했다. 목회자로서 다른 꿈 다 접으라면 말씀의 사람, 그것 하나로 남고 싶다.
성경 읽기를 마치고 카를로 카레토 수사가 쓴 '보이지 않는 춤'과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쓴 '매일의 묵상' 중 오늘에 해당하는 묵상을 찾아 읽는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은혜와 긍휼을 연관짓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좋은 묵상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힘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니 시간이 넉넉하다. 아직도 시간이 한참, 새로 설치한 샤워장에서 머리를 감았다. 물을 데워 세면대에서 하는 것보다 간편해서 좋았다. 머리를 말릴 겸 책상에 앉아 다시 책을 펼쳤다. 사흘 전에 읽기 시작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이다.
인디언 체로키족의 후손인 포리스터 카터가 쓴 자전적인 내용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글이 가득하다. 생활의 큰 변화로 점점 독서의 숨이 짧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책을 잡은 김에 아예 다 읽기로 마음을 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인가를 울었다. 나무와 바람 등 자연의 온갖 소리를 알아들었던 책 속의 주인공 '작은 나무'처럼, 나도 어느 샌가 작은 나무가 들려주는 온갖 이야기에 마음이 열려가고 있었다.
마음이 졸아든다 싶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에 젖곤 했다. 자연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작은 나무'가 고아원으로 보내져야 했을 때. 두마리 사슴을 찍은 사진을 놓고 다른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자연의 현상을 정확하게 이야기했을 때 오히려 그 일이 빌미가 되어 고아원 목사에게 몽둥이가 부러지도록 등짝을 맞을 때. 맞으면서도 마음으로 몸을 다스려 울지 않을 때. 마침내 '작은 나무'를 찾으러 온 할아버지와 함께 다시 산으로 돌아왔을 때. 인디언 노인 윌로 존이 자신을 따뜻하게 해 준 소나무 아래 거름으로 묻힐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죽고 마침내 끝까지 함께 하던 블루보이마저 죽어 땅에 묻힐 때.
마침내 책을 다 읽고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책을 덮을 때, 문득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돌아보아야 했다. 끝내 돌아갈 곳, 내 쓰러져 내 뼈를 묻을 곳은 어디인가.
자기 뼈를 묻을 곳을 아는 삶, 마음껏 그 삶을 사랑하는 삶이 행복한 삶일 터!
아내에게 메일을 보내 10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의 무료함을 그 책으로 달래보라 권하고 싶었다.
어느 샌지 배가 고파왔다. 건너뛰곤 했던 아침이었는데 책을 오래 읽은 탓인지 뱃속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를 내며 보채기 시작했다. 밥 거르지 말라며 아내가 챙겨준 미숫가루가 생각났다. 물을 끓이고 컵에 미숫가루를 담아 풀기 시작했는데, 양을 잘못 맞춰 곤죽이 되었다. 다시 물을 붓고 저으니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설탕을 조금 넣었지만 맹맹한 맛이 여전, 재운 김이 있는 게 생각이 나 미숫가루 한 숟갈 에 김 한 장을 먹으니 그나마 낫다. 이틀 뒤 아내와 아이들이 들어오면 같이 식사를 할 것이고, 그러면 이런 엉터리도 더는 없을 것이다.
식구들이 올 날이 이틀 뒤로 다가왔지만 아직 사택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맞는 뻔한 무모함이라니. 멀쩡히 사택을 놔두고 이 고생을 하다니 어이가 없다. 불쌍히 여길 뿐 마음 한 구석에라도 원망은 말기로 한다. 정 안 되면 교육관 유치부실이라도 당분간 써야 하리라. 히터 손을 보고 침대를 구하면 그런 대로 지낼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 불편해도 가족들이 잘 견뎌주기를. 이런 시간의 의미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단련시키기를. 같이 짐을 지는, 같이 어둠의 시간을 지나는 그런 시간일 뿐 행여 교우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 아니기를.
넉넉하게 이 시간을 지나 먼 훗날 돌아보는 오늘의 시간이 웃음이기를. '영혼이 따뜻했 던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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