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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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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25.할머니의 주일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들어서다 보니 예배당 한쪽 구석에 원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일할 때 들고 다니는 막가방이었습니다. 주저앉은 틈새로 물병과 호미자루가 배보였습니다,.
낮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하나보니 가방은 허석분 할머니의 가방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예배를 드리곤 곧장 밭으로 일을 나가려 아예 일가방을 챙겨가지고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인사를 마치자 할머니는 이내 강가 밭으로 일을 떠났습니다.
어둠이 내린 저녁예배 때에도 할머니는 일찌감치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주름진 얼굴이 벌겋게 그을린 채 였습니다. 사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난 자신이 없어집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집니다. 넥타이 매고 양복입고 그럴듯이 하는 내 말이 한갖 부질없는 흰소리가 되고 맙니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상추 좀 드릴까요?"‘ 할머니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그것이 할머니의 사랑입니다. 할머니는 전하는 사랑이 적다 생각하여 조심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조심스러움을 털며 ”좋지요“ 혼쾌히 대답을 합니다.
사실 난 상추를 좋아합니다. 석석 고추장을 발라 한입 가득 쌈을 싸먹는 것이 좋습니다. 더군다나 할머니가 키웠을,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상추인데요. 좋다는 대답에 할머니는 교회마당으로 내려가 우물가로 가더니 거기 놓아뒀던 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가방을 가지고 오는 할머니 모습을 보는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할머니가 손에 든 가방은 다름 아니 아침에 가지고 내려왔던 그 가방이었습니다.
그 가방이 말해주는 건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낮예배를 마치지 마자 강가 밭으로 일을 나간 할머니는 어둠이 내리도록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고, 집에도 들릴 새가 없이 곧장 교회로 온 것입니다. 그렇담 점심은. 저녁은?
밭에서 먹었다고, 집에 올라가 한술 더 뜨면 된다고 식사하고 가라는 청 가볍게 물리며 가방을 열어 수북히 상추를 꺼내 담곤 어둔 작실길로 오르는 허석분 할머니. 두 눈이 뜨거워져 더는 아무말도 못하고 할머니 뒷모습을 어둠 속 멀거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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