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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850 추천 수 0 2002.08.04 20: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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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 선물

어느 날 한국에 있는 한 청년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신학을 공부한 뒤에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수정, 처음 대하는 이름이었지만 그는 그 동안 내가 쓴 책을 모두 읽어 나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다고 했다.
메일을 보낸 것은 정월 대보름을 맞아 작은 선물을 보내고 싶은데,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 자체가 곱고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재차 메일이 왔다. 독자로서 인사를 하려는 것이니 편하게 받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생각하다가 음악 CD를 부탁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즐겨듣던 음악이 있었는데, 떠나기 전 아는 이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 이따금씩 듣고 싶을 때가 있었다. CD 이름이 희미했는데, 그 청년은 대번 CD 이름을 기억해냈다.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 같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체국으로 와서 등기우편물을 찾아가라는 쪽지가 우편함에 들어있었다. 우체국을 찾아가서 사인을 하고 물건을 찾으니 한국서 온 작은 박스였다. 지난번 메일을 보낸 청년이 보내온 소포였다.
집에 와 박스를 열어보니 세상에, 박스 안엔 올망졸망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부탁했던 CD는 물론 예쁘게 표지를 꾸며 만든 '행복한 과일가게'라는 CD도 들어있었고, 새우깡과 카라멜, 책 한 권, 라면도 5개가 있었다. 박스 바닥을 보고선 웃음이 나왔다. 호두가 쫙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헝겊 주머니 안에 앙증맞은 망치도 한 개 들어있었다. 웬 망치일까? 그러나 이내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헝겊 주머니 안에 호두를 넣고 망치로 깨뜨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햐-, 세심하기도 해라!
박스 맨 밑바닥에는 신문이 깔려 있었는데, 최근판 한겨레신문이었다. 오랜만에 대하는 한글로 인쇄된 신문, 게다가 한국에 있을 때 구독하던 신문이 마침 한겨레신문, 그 또한 새로웠다.
물건을 다 꺼냈을 때 보이지 않는다 싶은 것이 있었다. 간단한 메모나 카드, 혹은 편지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느 것도 없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지 못한곳에 살짝 숨어있어 쉽게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아주 간단한 , 그러나 인상적인 인사말이 박스 바닥 한쪽에 적혀있었다. 박스 자체에 적은 인사말, 신선했다.
마침 다음날이 토요성경공부모임, 아내와 나는 교회로 가며 호두와 헝겊 주머니와 망치를 챙겨 가지고 갔다. 부럼이란 말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교우들과 함께 호두를 깨 먹으며 잠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음이 다 담긴 선물이 주는 즐거움은 언제라도 그렇게 넉넉한 것이었다. 200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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