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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어떤 만남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1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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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68.어떤 만남


결국은 그도 떠났습니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박세철 청년.
서울에 올라가 대학을 졸업하고선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던 청년이었습니다. 검은 뿔테의 안경을 걸친, 겉으로 보기에도 이지적인 용모를 지닌 그가 경운기를 몰고 다니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버지와 대판 싸운 것도 여러 번,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자기가 겪은 고생 아들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많은 고생 참아가며 대학까지 공부시켰더니 기껏 한다는 게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는 거냐고, 널 공부시킨 건 이깟 농사일 하라고 시킨 것 아니었다고, 속상한 아버지는 시간 있을 때마다 아들에게 된 역정을 내곤 했던 것입니다.
세철씨가 할 일이 없어서 고향에 내려온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당찬 포부가 있었습니다.
고향을, 농촌을 지키겠다는, 말로 하면 부끄러운 그런 명분을 두고라도 농사를 지어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습관처럼 반복되는 삶을 이어가는 부모님께, 부모님 세대에서 확인시켜 드리고도 싶었던 것입니다.
대학출신답게 그는 농사에 관한 책을 열심히 보았습니다. 양봉, 젖소, 사슴 양육에 관한 책, 이따금씩 버스에서 만날 때면 그의 손엔 언제나 그런 책이 있었습니다.
시기를 셈하기도 했습니다. 농사가 일어설 수 있을 때를 나름대로 헤아리기도 했습니다.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한동안은 면허증을 따기 위해 시내를 나가기도 했습니다.
농사꾼, 그 허름한 차림에 때론 경운기를 몰고 때론 지개를 지고 오가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난 어떤 외경심마저 느끼곤 했었습니다. 한번도 그에게 그런 말 한 적은 없지만 그 모습이 내겐 거룩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향을 찾아 고향을 지키는 한 드문 젊음이 더없이 고마웠고 괜히 마음 든든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구정을 얼마 앞두고 서울로 떠나간 것입니다.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그의 손에 커다란 가방이 들려져 있길레 물었더니 떠나는 길이라 했습니다. 내가 졌노라고,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고 그는 힘없이 패잔병처럼 말했습니다.
아쉽다고,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마음속으로 많이 성원했는데 그렇게 떠난다니 섭섭하다고 하자 그냥 힘없이 웃을 뿐이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 공부 마치고 돌아온 아들 보곤 나가라 언성 높였지만 막상 떠나는 아들 보면서는 온통 허전함 뿐이었을 것입니다.
당신 원하는 대로 아들 떠나 잘 되었지만 어쩜 남으려 했던 아들이 옳았지, 그 아들을 왜 대견히 받아주지 못했을까 뒤늦게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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