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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피하고 싶은 심방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3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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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76.피하고 싶은 심방


솔직한 고백 하나 하자.
목회자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심방이리라. 그런데 요즘의 난 점점 심방을 기피하고 있다.
계속된 행사에 정신없이 한 주일이 가버리곤 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맘속 깊이 있었음을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신작로 건너편 산중에 계시는 변음전 할머니를 심방하고 올 때였다. 문득 그 이유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늘 아프셨지만 요즘은 더하셔 거의 음식도 들지 못하고 계시다. ‘뜸물’ 같은 소변만 여러 날 보고 계신다.
산중 할머니와 두 분이 사시며 그래도 끼니마다 할머니는 ‘샛님’을 위해 음식을 마련했는데, 이젠 할머니가 앓아누우신 것이다. 할머니가 드시고 싶다는 콩죽을 위해 할아버지가 그릇 하나 가득 콩을 하얗게 갈아 놓고 계셨다.
지난번 전해 드린 초를 거의 다 써서 이제 또 다시 끌음 많은 등잔불을 쓰고 계셨다.
하나님이 주신 것 고맙게 썼노라고 거듭 거듭 인사를 했다. 어느 날은 잠이 오지 않아 고추를 다듬으며, 때론 서러움에 울며 한밤을 꼬박 촛불 밝혔노라고 미안해하기도 했다.
며느리가 보내 준 영지버섯을 멋도 모르고 한꺼번에 삶아 그 물을 마셨다가 며칠간 고생하기도 했다 한다. 늘 하던 대로 찬송 몇 곡 부르고 시편 어디에선가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며 인사를 받으며 내려오는 길, 저토록 사람 그리워하시는 할머니신데 왜 자주 찾아뵙지 못할까. 자책하며 내려올 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심방의 대부분은 그런 경우다. 가서 어려운 모습을 보아야 하고, 어려운 얘기를 들어야 한다. 이사, 승진, 개업 그런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점점 그게 두려운 것이다.
어려운 얘길 듣는 것도 쉽지 않지만,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대책 없는 막연함 앞에 느끼게 되는 무력감, 나도 모르게 가슴 속 쌓여가는 그 무력감이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하는 말씀과 말씀을 듣는 이와의 현실과는 가 닿을 수 없는 엄연한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변화를 가져오기엔 너무도 무력한 만남, 난 나도 모르게 그걸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견디며 극복해야 할 것, 그게 무엇이었던지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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