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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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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2039] 마중물 -독일에서 띄우는 편지
□ 풍력 발전기
우리 나라 국가대표팀과 터키 대표팀의 축구 평가전이 열리던 날 교우 몇 분과 함께 축구장을 찾았다. 마침 유럽 전지훈련을 하고 있던 우리 나라 대표팀이 보쿰에서 터키와 평가전을 갖게 되었던 모양이다.
교우로부터 축구 이야기를 듣고는 독일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에게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 신청을 했다.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서 보쿰을 향해 길을 떠났다.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국가대표팀이 뛰는 경기를 독일에 와서 보게 되었다는 설렘과 기대감과는 달리 그 날 일정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낡은 버스와 그 버스를 운전한 기사 탓이 컸 다.
버스는 오래된 버스였고, 속력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버스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기사는 더욱 그랬다. 말이 끄는 수레를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도무지 속력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분명 우리 일행이 탄 버스보다 늦게 떠난 버스가 벌써 경기장에 도착을 했고, 경기는 오래 전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아직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아무리 한국말이지만 버스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운전기사는 전혀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경기 시간에 늦었으니 어서 빨리 차를 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차안에 휴지나 오물을 떨어뜨리는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는 했다. 저러기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기사는 무대책이었다.
겨우 보쿰에 도착하고 나니 이번에 교통체증, 끝 모르게 이어진 차량의 행렬이 바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에 탄 사람들의 툴툴거림만큼 버스는 툴툴거리면서 겨우 겨우 앞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그나마 후반전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버스가 도착을 하고 서둘러 경기장에 들어가니 막 후반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으로 찾은 축구경기장에는 축구경기장 만이 갖는 뜨거운 열기가 넘치고 있었다. 보쿰에는 100만 명이 넘는 터키 사람들이 살고 있다더니, 정말로 보쿰 경기장은 터키의 홈구장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북과 꽹과리를 쳐대며 한국을 응원하는 응원의 열기도 뜨거웠지만 한쪽 구석의 요란함일 뿐이었다. 이따금씩 우-!하고 터키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면 이내 운동장엔 터키 사람들의 함성만이 가득 차곤 했다. 때마다 귀가 먹먹했다.
결국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이 났다. 시원한 골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어렵게 갔다가 이내 그것도 허망하게 돌아서는 길, 돌아오는 길도 갈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 버스에 그 기사였으니 달라질 것이 없었다. 결국은 자정이 넘어서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 날 본 것은 그런 것뿐이었다. 그러나 본 것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 어디쯤이었을까, 어둠 속을 버스가 달릴 때 차창 밖을 보니 도로 옆 언덕 위에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커다란 바람개비가 어둠 속에서 의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변함없이 날개를 돌리고 선 풍력발전기의 모습은 남모르는 곳에서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처럼, 경건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어둠 속 묵묵히 날개를 돌리고 있는 풍력발전기의 모습을 보았고, 그 하나만으로도 아주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2002.6.10 ⓒ한희철 ( 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 풍력 발전기
우리 나라 국가대표팀과 터키 대표팀의 축구 평가전이 열리던 날 교우 몇 분과 함께 축구장을 찾았다. 마침 유럽 전지훈련을 하고 있던 우리 나라 대표팀이 보쿰에서 터키와 평가전을 갖게 되었던 모양이다.
교우로부터 축구 이야기를 듣고는 독일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에게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 신청을 했다.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서 보쿰을 향해 길을 떠났다.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국가대표팀이 뛰는 경기를 독일에 와서 보게 되었다는 설렘과 기대감과는 달리 그 날 일정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낡은 버스와 그 버스를 운전한 기사 탓이 컸 다.
버스는 오래된 버스였고, 속력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버스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기사는 더욱 그랬다. 말이 끄는 수레를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도무지 속력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분명 우리 일행이 탄 버스보다 늦게 떠난 버스가 벌써 경기장에 도착을 했고, 경기는 오래 전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아직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아무리 한국말이지만 버스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운전기사는 전혀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경기 시간에 늦었으니 어서 빨리 차를 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차안에 휴지나 오물을 떨어뜨리는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는 했다. 저러기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기사는 무대책이었다.
겨우 보쿰에 도착하고 나니 이번에 교통체증, 끝 모르게 이어진 차량의 행렬이 바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에 탄 사람들의 툴툴거림만큼 버스는 툴툴거리면서 겨우 겨우 앞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그나마 후반전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버스가 도착을 하고 서둘러 경기장에 들어가니 막 후반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으로 찾은 축구경기장에는 축구경기장 만이 갖는 뜨거운 열기가 넘치고 있었다. 보쿰에는 100만 명이 넘는 터키 사람들이 살고 있다더니, 정말로 보쿰 경기장은 터키의 홈구장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북과 꽹과리를 쳐대며 한국을 응원하는 응원의 열기도 뜨거웠지만 한쪽 구석의 요란함일 뿐이었다. 이따금씩 우-!하고 터키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면 이내 운동장엔 터키 사람들의 함성만이 가득 차곤 했다. 때마다 귀가 먹먹했다.
결국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이 났다. 시원한 골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어렵게 갔다가 이내 그것도 허망하게 돌아서는 길, 돌아오는 길도 갈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 버스에 그 기사였으니 달라질 것이 없었다. 결국은 자정이 넘어서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 날 본 것은 그런 것뿐이었다. 그러나 본 것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 어디쯤이었을까, 어둠 속을 버스가 달릴 때 차창 밖을 보니 도로 옆 언덕 위에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커다란 바람개비가 어둠 속에서 의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변함없이 날개를 돌리고 선 풍력발전기의 모습은 남모르는 곳에서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처럼, 경건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어둠 속 묵묵히 날개를 돌리고 있는 풍력발전기의 모습을 보았고, 그 하나만으로도 아주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2002.6.10 ⓒ한희철 ( 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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