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한희철1438. 밭에서 드리는 성사
아랫말 안속장님네를 찾았더니 세 분 노인들이 모두 자리에 누워있었다. 아들 잃은 뒤론 방에도 들어가기 싫다 하셨던 그 방에 유경복 성도님이 혼자 누워 계셨고. 옆방엔 두 분 다 백발이 성성한 안속장님과 작실언니가 누워 있었다. (나는 유경복 성도님을 그냥 ‘아저씨’라 부른다. 나이로 따지면 할아버지요, 관계로 따지면 ‘성도님’이지만 그냥 ‘아저씨’라 부르고 그분도 그 호칭을 편하게 받아 주신다.)
모두 상노인네들, 또한 몸이 모두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하다. 그나마 움직였던 아저씨마저 아들 먼저 보낸 뒤론 눈에 띄게 약해져 세사람 모두가 누워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혹시 회충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번도 회충약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입맛이 통 없는걸 보면 회충일지도 모르겠다며 옆방으로 건너온 안속장님은 안스러운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날 원주를 다녀오며 회충약을 세 개 사왔다. 한알만 먹어도 된다는 약이었다. 약을 전해 드리러 아랫말로 내려가다 보니 학교 모퉁이 밭에서 아저씨가 광철씨를 데리고 콩을 뽑고 있었다.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재미로 쇠약해진 몸으로도 콩을 심은 것이었다. 약을 보니 그냥 씹어 먹는 막 것이 더 좋다고 씌여 있어 하나를 꺼내 전해 드렸다.
약을 받으려는 아저씨의 장갑 낀 손엔 흙과 도깨비 풀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제가 넣어 드릴께요”
약을 꺼내 아저씨 입에 넣어 드렸다. 이가 빠지고 약해진 아저씨는 껌을 씹듯 한참을 약을 씹어 드셨다. 약을 꺼내 아저씨 입에 넣어 드릴 때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일종의 성사라는.
성만찬 예식때 떡을 넣어 드리는 것과 닮지 않았냐는, 이 땅, 콩을 거두는 밭에서 드리는 성사란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얘기마을1996)
|
|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