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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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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83. 보름이의 자유
식구 중 호랑이띠가 있으면 개가 안 된다는 이야기는 어릴적부터 많이 들어왔다.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아내는 개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승학이네 개가 낳은 강아지를 지난해 한 마리 샀는데, 보름날 낳았다해서 이름이 보름이가 되었다. 일년여만에 보름이는 덩치가 제법 큰 개로 자랐다.
강아지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보름이에게로 가 뭐라고 뭐라고 얘기도 나누고, 먹을게 생기면 얼른 갖다주기도 하고, 가끔씩은 물을 퍼다 주기도 한다.
강아지 때야 풀어 놓을 적이 많았지만 덩치가 커지면서는 개장 앞에 묶어 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화장실 옆에 있던 개장도 언덕 위 닭장 앞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저는 반가워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화장실 드나드는 놀이방 아이들에게 때마다 달려드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 보름이 좀 풀러줘요.”
요즘 아이들은 저녁때만 되면 보름이 좀 풀러 달라는 게 일이다. 매여있는 모습이 영 불쌍한 모양이다. 덩치가 크고 가까이 가면 반갑다고 덤비는지라 아이들이 풀러주기는 어려우니까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매였던 끈을 풀러주면 보름이는 그야말로 난리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어디로 뛰어야 할지를 몰라 또 뛰고, 매여있다 풀려난 기쁨을 미친듯 뛰며 만끽한다.
아, 사슬 하나가 풀리면 저런데, 사슬 하나에도 저렇게 뛰는데 우리를 얽매고 있는, 얽매고 옥죄고 있는 수많은 사슬들, 도대체 우리의 꼬락서니는 뭐란 말인가. “기뻐뛰며 춤을 추겠네”는 언제 어느 때에나 누리게 될 은총인가. 한개씩 한개씩 풀러지는 때마다 벅찬 은총이라면 우리 삶이 은총으로 이어지는 것일텐데.
매여있는 보름이가 불쌍해 보이는 아이들에 비해, 매여있는 개가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보어는 나는 이미 얽매임에 익숙한 탓이 아닐까. 어느날 개를 끌러주고 길길이 뛰는 놈을 보며 매여있는 나를 본다.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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