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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2. 당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2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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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72. 당근

 

“할 수 없쥬 무. 으뜩케요 낭중에락두 들어와 종자 값이나 건졌으믄....”

강가 밭에 심은 당근들이 제법인데 어찌 올핸 장사가 얼씬을 안 한다. 싹이 나기가 무섭게 계약이 이루어지던 예전과는 영 딴판이다. 전 같았으면 벌써들 밭으로 다 넘겼고, 누구한테 팔면 값을 조금 더 받을까, 가벼운 저울질을 끝냈을 텐데 이번엔 사정이 영 다르다. 

장마가 지나며 당근들이 밭에서 썩기 시작하는데도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하나 사려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미리 사두면 장마철에 많이 썩게 되어 늘 손해를 보니까 당근 장수들끼리 짜고 장마 뒤 헐값으로 사들이려는 게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그들 속마음을 누가 알까, 답답할 뿐이다.

수요예배를 드리던 날, 할머니 모시러 작실로 올라가 다른 교우들 기다리며 허석분 할머니께 당근 걱정을 했더니 모두 체념한 듯 할머니 말씀은 쉬웠다. 종자값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말씀이 참 슬펐다.

그거 키우느라 할머니 흘린 땀이 얼만데, 다쳐 아픈 손으로 그 먼 길을 오르내리며 쏟은 정성이 얼만데.... 씨 값이라도 건지길 바라는 할머니의 바램을 두고 당근은 밭에서 하루 하루 썩어가고 있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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