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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 공교로운 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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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034. 공교로운 일


병들어 버림 받은개, 아내가 ‘나사로 개’라 불렀던 불쌍한 그 개가 드디어는 죽었다. 죽고 말았다. 비루먹어 온몸이 헌디 투성이였던 보기 흉하고 징그럽던 개, 산모퉁이 동네 쓰레기장에서 먹고 자며 근근히 버티더니 몹시 춥던 날 아침 드디어는 죽고 말았다.
교회 화장실옆 길 한쪽에 뺏뺏하게 죽어 있었다. 병들어 징그럽던 개가 죽어 잘 됐다 싶으면서도 죽은 모습을 보니 불쌍하기도 하다. 아니 한없이 불쌍하고 미안하다.
가끔씩 먹을 걸 줬던 아내에 비해 난 맨날 보는대로 구박만 했으니까. 죽기 전날만 해도 축 처진 몸에 침을 질질 흘려 갈 때를 짐작케 했지만 추위를 피해 들어온 그놈을 날이 찬 그 밤 난 모질게도 광에서 쫓아냈으니까.
터벅 터벅 힘 없이 쫓겨가는 병든 개를 쫄랑 쫄랑 쫓아가는 강아지를 불러 강아지만 광 안으로 들이곤 문을 꼭 닫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결국 그 밤을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으니 아무리 흉한 짐승이라 하여도 마음이 좋을게 없다.
마침 심방길에 죽어 나자빠진 개를 본 교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잘 죽었다고, 잘된 일이라고들 했다. 일부러 차로 칠려는 시도도 있었고, 총으로 쏘려는 생각들도 있었는데 저절로 죽었으니, 죽어 줬으니 얼마나 잘 된 일이냐는 것이었다.
태어나 언제 한번 귀염받아 보지도 못하고 병들어 버림받은 채로 길가에서 얼어 죽은 개, 여러 사람이 오고 갔을 테이지만 죽은 개는 한나절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그냥 있었다. 가까이 하기도 싫어 저만치 잘됐다고 비켜 갈 뿐이었다.
저녁무렵 삽을 들고 뒷산에 올라가 양지쪽으로 땅을 팠다. 다행히 땅이 얼지 않았다. 얼기설기 뻗은 나무뿌리를 잘라가며 커다랗게 구덩이를 판 뒤 죽은 개를 들어왔다.
땅에 눕히곤 흙을 덮기 전 낙엽을 먼저 덮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 그 불쌍함을 낙엽으로나 덮어주고 싶었다.
병든 개 죽었다는 얘길 듣고 어디 한데 갔다 버리겠다고 했던 성이 아빠는, 목사님이 묻어 주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게 좋겠다고, 불쌍한 개니 기도나 해주고 묻어 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는데, 재성이 아빠의 말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래 낙엽으로 흙으로 덮으며 내내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낙엽 덮는 마음은 차라리 그동안의 매정함에 대한 사죄이기도 했다.
‘너는 이제야 쉬는구나, 죽어서야 쉬는구나.’
개를 묻고 내려와 신문을 펴니 쌀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피 빛 절규 가 가득하다. 그래, 그날 버림받은 개는 얼어 죽었고. 죽은 뒤엔 아무것도 아닌 낙엽 한 켜 뒤집어쓰곤 땅에 묻혔다.
공교롭다고?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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