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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 돌공장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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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69. 돌공장


며칠 전, 서울에 있는 한 지방에서 여름수련회 답사를 내려 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국민학교가 그런대로 수련회 갖기에 좋은 조건인지라 해마다 수련회를 오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안내를 합니다.
국민학교에 들려 선생님을 소개도 시켜드리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개울도 알려 드립니다. 사람들이 않 이 모이는 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조용하고 넓은, 물놀이 하기에 적합한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살고 있기때문에 알고 있는 곳입니다.
답사온 이들을 안내할 때마다 관광안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전혀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멀리서 내 동네를 찾아온 분들, 그만한 시간쯤은 기꺼이 냅니다. 십여년 전, 도시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수 런회를 준비하여 입었던 농촌 목회자들에 대한 고마운 기억이 아직껏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방 중고등부 수련회를 위해 들린 목회자 몇 분과 함께 국민학교 에 들렸다가 개울가로 나갔습니다. 개울도 직접 볼 겸 홍보를 위한 사진도 찍을 겸 나갔습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보(派)를 허리춤으로 깨끗한 물이 알맞게 고였고, 바닥은 고운 모래들 바로 옆 산과 어울린 개물은 여전히 보기가 좋았습니다.


개울가엔 천렵을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잡기도 하고, 한쪽에 선 매운탕을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천렵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 보기에 좋아 가보았더니 마침 아는 아저씨가 한분 있었습니다. 옆동네인 조귀농에 사는 아저씨였습니다. 서울 친구들이 내려와 같이 천렵을 나왔다 했습니다. 고기가 좀 잡히느냐 묻자 아저씨가 시원찮은 대답을 합니다. 제법 물고기가 많은 개울인데 왜 일일까 싶어 다시 물었더니 아저씨가 돌공장 얘기를 합니다.
지난해, 개울 바로 윗편에 돌공장이 생겼습니다. 마을이 덕분에 개발되지 않을까 했던 기대와는 달리 돌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개울이 죽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 흘려보내는 돌깎은 물이 맑은 개울물을 온통 뿌연 물로 만들어 버렸고 고기들이 허옇게 떠올라 악취까지 심하게 풍겼습니다. 아저씨와 마을 몇 사람이 공장으로 찾아가 항의를 했습니다. 눈가리고 아웅, 공장에선 여전히 그 더러운 물을 내려보냈습니다. 밤중에 몰래 말입니다.
농사일 바쁜 아저씨가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 개울물이 어떤 물인데 농사일 보다 그 일이 더 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면에도 찾아가고, 군청에도 찾아가고, 물어 물어 환경청에도 찾아가고 아저씨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아저씨 힘이 약했던지 돌공장 힘이 강했던지 돌공장은 돌처럼 꿈쩍 할 줄을 모르고 여전히 돌아갔습니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방송국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 했고, 방송국에서는 그 얘기를 상세하게 방송을 했습니다.
방송의 힘은 강했습니다. 이내 돌공장의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이번 여름행사 주제가 “창조와 생명교육”, 그 아저씨야말로 가장 좋은 강사 아니겠냐며 돌아오는 길 아저씨의 노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허름한 농사꾼 그러나 내 마을을 깨끗하게 지키려는 분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여간 든든하고 고맙지 않았습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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