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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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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30. 수탉
1
정은근 집사의 수고로 닭장을 교회 뒤편 하우스 자리로 옮겼다. 닭장이 제법 넓어져 이리저리 거닐며 모이를 쪼는 닭들의 모습이 한결 여유있어 보인다. 하루에 서너개씩의 달걀을 꺼내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다.
암탉 일곱을 거느린 수탉의 모습은 늘 그럴 듯 하다. 벼슬과 깃털등 생김새도 그러하거니와, 여간해선 잰걸음이 없는 점잖음에 품이 있고, 먹이를 줘도 급히 달려드는 법이 없는 느긋함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땅을 파헤쳐 먹을게 나와도 제가 먹기보단 옆에 있는 암탉에게 양보하곤 한다. 그것이 암탉 앞에서의 체통 때문인지, 암탉을 향한 사랑인지는 몰라도 수탉에겐 웬지 모를 너그러움이 있다.
수탉의 진가는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새로 온 개 꾀순이는 이따금씩 심심해지면 닭장으로 가 닭장을 빙빙 돌며 닭들에게 시비를 건다. 그때마다 암탉들은 놀라 저만치 도망을 치고 그러다간 닭장 안으로 숨어버리곤 하지만 수탉은 전혀 다르다. 망사 밖, 꾀순이가 가는대로 따라돌며 ‘어디 한번 해 볼테면 해 보자’는 식으로 꾀순이를 노려본다. 그 모습이 여간 매섭지를 않아 꾀순이도 슬그머니 물러서고 만다.
2
며칠 전 은진이 할머니가 몸이 안 좋은데 토종닭으로 옻닭을 해 먹으면 그게 약이 된다며 은진이 아빠가 닭을 한 마리 구하러 왔다.
병아리 때부터 공들여 키워 알을 잘 낳게 된 닭을 내 손으로 꺼내주기가 섭섭해 은진이 아버지더러 한 마리 아무거나 붙들어가라고 했다. 닭장 안에서 난리가 났다. 안잡힐려고 도망다니는 닭들의 안간힘이 필사적이었다. 꼬꼬댁거리며 소리를 치고, 푸드덕푸드덕 이쪽에서 저쪽으로 튀어올라 난리가 났다.
그런 와중, 수탉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도망 다니느라 난리인 암탉들과는 달리 수탉은 단호하게 낯선 침입자와 맞서고 있었다. 깃털이란 깃털은 있는대로 세워 올리고, 당장이라도 쪼을 듯 목을 길게 빼고선 어떻게 해서든지 암탉들을 제 뒤에 두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정말 비장한 모습이었다.
수탉의 안스러운 방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선택받은(?)암탉 한 마리가 붙들리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닭장은 조용해 졌지만 얼마 후 나가보니 아직도 암탉들은 한쪽에 모여 떨고 있었으며 수탉은 저만치 혼자 서 있었는데 여간 풀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끝까지 암탉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의 못남을 두고두고 책망하는 모습이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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