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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514.은희 할머니
은희 할머니가 쌀을 가지고 오셨다. 제법 큰 양동이 가득 하얀 쌀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새로 방아를 찧었다며 쌀을 가져오신 것이다.
교인이 아니면서도 그렇게 꼬박꼬박 당신의 정성을 전하시는 할머니. 차 한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마루에 앉아 나눈다.
연극을 연출하는 이가 고생 고생하는 역을 할머니에게 맡긴 듯, 그런 모진 역을 그게 내역이다 싶게 그냥저냥 한평생의 삶으로 맡아 오신 할머니의 생.
할머니의 주름과 백발 위엔 말로 못할 삶의 무게와 엄숙함이 무겁게 배어 있었다. “나 죽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어린 것들 나 죽으면 으뜩하나 그게 걱정이지요.”
어린 손녀들이 빨리빨리 커야 할 텐데 어려서부터라도 제 앞가림을 잘해야 할 텐데, 그들을 위해서라고 할머니는 약해질 수가 없다. 허리가 굽을 대로 굽어 저러단 땅에 닿지 싶은, 허리가 땅에 닿아야만 땅에서 일손 놓으실 은희 할머니.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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