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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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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97.시골장
이곳 단강에서 가장 가까운 장은 부론장입니다. 단강에서 20리 떨어진 부론에 1일과 6일 그러니까 5일장인 부론장이 아직껏 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가보면 말이 장이지 벌어진 모습은 장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빈약하고 초라한 모습입니다.
옹기종기 한눈에도 셀 수 있는 적은 사람이 몇 가지 물건을 펼쳐놓았을 뿐입니다. 옷가지, 신발, 그릇 등 물건 또한 색다른 것이 아닙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어울려 북적대야 그게 장이고 그런 장이래야 장다운 흥이 있는 법인데 부론장에는 어디에도 그런 구석이 없습니다. 돈이 아쉬운 인근의 사람들이 약간의 곡식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고작, 장은 정오경 파하기 일쑤입니다.
동네 노인들게 물으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답니다. 부론장에는 부론면 사람들 뿐 아니라 강 건너의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 사람들, 충북 중원군 앙성면 단암리 사람들, 3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장날이면 부론이 들썩거렸습니다.
꼭 물건을 팔고 살 일이 없어도 사람들 북적댐이 좋아 바쁜 일 젖혀두고도 부론장에 나와 보길 좋아했다고 합니다. 장을 더욱 세우기 위해 7월 백중날이 되면 신명나는 판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씨름판, 윷판, 농악대회, 줄다리기 등은 멀리서 광대며 남사당패를 불러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노인들의 기억 속엔 그때 그 모습이 요란한 농악 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 불 사그라들 듯 썰렁해진 장 모습이라니,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헤아리며 아픈 마음을 어쩌지 못합니다.
엊그제 부론장을 찾았을 때 난 멍하니 서서 온통 내 시선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늘 그랬듯 장은 초라한 모습 그대로였지만 날 사로잡은 건 길가 나란히 늘어선 은행나무들이었습니다. 노란 은행잎들이 빈틈없이 물들어 눈부시도록 빛나고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새떼의 날개짓처럼, 맘껏 축하받을 사람에게 쏟아진 꽃다발처럼, 커다란 합창처럼, 아니 어떤 비유도 거부하는 몸짓으로 은행잎은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텅 빈 장을 위로하기 위한, 사라진 사람들의 만남을 감싸 안으려는 따뜻한 품으로 보였습니다. 불현 듯 그 안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싶은, 그러다가 풀썩 쓰러지고 싶은 왠지 모를 충동을 달래느라 난 한동안, 정말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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