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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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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소주병 꽃꽂이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시간에 들어온 광철씨의 손엔 꽃병이 들려 있었다. 묵도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성큼 제단으로 나온 -사실 두 걸음이면 되지만 -그는 “전도사님, 여기 꽃 있어요”하며 꽃병을 내민다.
산에 들에 피어난 꽃을 한묶음 꺾어 병에 담아온 것이다. 잠시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 순박한 마음이 틀린 것 아니기에 웃으며 받아 제단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꽃을 담아온 병이 다름 아닌 소주병이었다. ‘백합소주’였다. 모두들 악의 없이 웃었다.
혹 광철씨 마음에 상처가 가지 않도록 좋게 말하며 나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 찡하니 울려오는 게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꽂이는 이런 것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시골 전도사 한달치 생활비를 윗도는 액수로 매주 넓은 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큰 교회 꽃꽂이에 비한다면, 이건 돈 한 푼 안 들인 더없이 초라한 것일 수 있지만, 진짜는, 진짜 꽃꽂이는 그래도 이런 쪽이 아닐까.
잠시 땀을 닦으며 나무 그늘에 앉아 한 잔씩 나눠 마신 바로 그 병에, 일터 주위 사방 피어난 꽃을 꺾어 바쳤다면, 이것 또한 진솔하고 꾸밈 없는 정성 아닐까.
-하나님, 소주병이라고 책하진 마십시오. 많은 시간 술기운 벗 삼아 일하는 우리들로선 친숙한 병이랍니다. 물 주며, 비료 주며, 가지 치며, 화원에서 정성스레 가꾸진 못했어도, 이슬로 땅속으로 당신이 키우신 꽃 그냥 드리오니 그냥 받아 주소서. 행여나 정성 모자르다 야단 치진 마소서.
예배 마치고 돌아가는 길, 미안한 듯 손을 잡는 광철씨께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실 거에요.” 거듭 거듭 말한다. 올핸 부디 하나님의 은총으로 노총각 신세 벗을 수 있기를 빌며.
오늘 바친 들꽃처럼, 수수하고 이름모를 여자를 만나. (얘기마을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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