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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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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96. 국민학교 운동회
단강국민학교 가을운동회가 있었다. 51회 운동회였지만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지나온 햇수만큼도 안돼 40여명 뿐이었다. 국기 게양대에서 퍼져나간 만국기는 부는 바람 따라 설레게 펄럭거렸지만 만국기 아래 학생들은 각 나라 숫자만큼도 안 되었다. 마치 도시에 있는 학교의 한 반이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그 적은 인원을 홍군과 백군으로 나누니 숫자가 더 적어졌다.
왠만한 순서는 서너학년씩 묶어 함께 했지만 그것도 금방금방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로 아기자기한 순서들을 준비하였고, 학생들 적은 만큼 어른들이 참여하는 순서를 사이사이에 집어넣어 모두가 어울리는 보기 좋은 모습을 연출하였다. 구경꾼과 참여자가 따로 없었다. 모두가 하나로 어울리는, 조촐하지만 흥과 재미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받으면 좋고 못받으면 말고>라는 순서도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순서였다. 작은 널판 끝에 공을 올려놓고 반대쪽을 밟으면 공이 하늘로 솟아오르는데, 학생이 널판을 밟고 학부모는 공을 잡는 순서였다. 어떻게 해서든 자식 편에 도움이 되려고 학부모들은 열심을 다 했지만, 경기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엉뚱한 방향으로 손을 벌리고 달리곤 했다.
솟아오른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 방향으로 날아오르는데도 어머니들은 번번히 반대 방향으로 손을 벌리고 달리니 그처럼 엉뚱한 일이 없었다. 덕분에 운동장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이어 벌어진 <기마전> 어릴 적 기억으로는 운동회 날 기마전을 하면 이편저편 세워진 말들이 겁나게 많아 그야말로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 군사들과 같았는데 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남자 여자 다 참석했는데도 세워진 말들은 각각 넷,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천지를 진동하게 했던 우- 하는 함성은 들을 수도 없었다. 지친 패잔병들이 힘없이 후퇴를 하다 역시 적군 패잔병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하는 듯 싶었다.
1-2학년 어린이들의 <뛰어라 굴려라>는 얼마큼을 뛰어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경기였다. 자전거 바퀴로 써도 그럴듯한 굴렁쇠였지만 아이들은 생각만큼 굴렁쇠를 잘 굴리지 못했다. 굴러가던 굴렁쇠가 쓰러지곤 쓰러지곤 했다.
아이들 순서가 끝나자 굴렁쇠에 그리움이 동한 어른들이 서너명씩 나와 굴렁쇠를 굴리며 운동장을 달렸다. 어른들이 굴리는 굴렁쇠는 여전히 잘도 굴렀다. 운동장 서편 농구골대 뒷쪽으로는 마을 노인분들이 나란히 앉아서 운동회를 구경하였다. 엉뚱하고도 외람된 생각이지만 그분들의 모습은 철이 바뀌어 곧 먼길 떠나야 하는 새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강태공> 순서를 통해 모처럼 운동장으로 나가 술과 담배등을 낚은 노인들은 자연스레 술판을 마련하여 지난 세월을 회고 했다.
“옛날엔 증말 헐만 했지”
“그땐 사람이 을마나 많은지 뺑 둘러스면 귀경두 제대루 못했어. 그 많던 애들이 다 어디간게야?”
“어딜 가긴 어딜가, 죄 서울갔지.”
서른 여가지 순서가 늦지 않게 끝났고, 끝까지 남았던 젊은 사람들은 끝내 풀리지 않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양 축구를 했다. 그때는 컸으나 지금은 작아진 운동장, 그때는 정말 많았으나 갈수록 적어지는 아이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젊은이들은 그런 회한어린 마음까지를 함께 차내고 있었다.
51회라는, 결코 짧지 않은 단강국민학교 운동회가 그렇게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끝났다.(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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