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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신비한 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11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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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120. 신비한 밤

 

강을 끼고 살면서도 강에서 고기를 어떻게 집는지 모르고 지내왔다. 그저 바라보는 게 좋고 이따금씩 고둥을 잡는 재미야 누렸지만, 고기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하루는 다 저녁때 일부러 강으로 나갔다. 낚시하러 강으로 나간 학래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학래 아빠가 자기는 단강에서 여름이 제일 좋다고, 여름을 제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낚시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여름을 사랑한다’고 할 만큼 학래 아빠를 푹 빠지게 한 낚시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던 차에, 수원에 사는 큰형이 전화를 해왔다. 회사 사람들과 하루 낚시를 하러 오고 싶다는 전화였다. 손님 안내를 하려면 고기잡는 자리며 방법등을 미리 알아 두어야 하겠기에 겸사겸사 강으로 나간 것이었다. 

덕은리 당근밭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들자 이내 강이었고, 저만치 학래 아빠가 세워둔 차가 보였다. 양수기가 설치되어 있는 취수장 아래, 전에 배가 강을 건너 다닐 땐 나룻터 자리였던 그 자리에 학래 아빠는 벌써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날마다 계속되는 무더위, 더위를 쫓기 위해, 매일 같이 치솟는 전기 사용량을 메꾸기 위해 충주댐에서 제법 많은 양의 물을 방류하는 탓인지 흘러가는 물의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룻터였던 그 자리는 움푹 안으로 들어와 있어 급한 물살로부터 서너 걸음 비껴나 있었다. 

이내 해가 서산을 넘었고 흘러가는 강물을 거슬러 땅거미가 깔려들기 시작했다. 붉은빛 노을이 빛을 잃어갈 때 하늘엔 붉은 달이 떠올랐다. 노을 빛을 모아 담은 듯 정말 달이 붉디붉다. 흐르는 강물 위론 뽀얀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물안개는 또 하나의 그윽한 강이 되어 강을 따라 흘렀다. 

어디 급한 경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만치 아랫쪽에선 높다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처럼 웅장한 물소리가 들려왔고, 물소리를 따라 선선한 미풍이 불어오기도 했다. 깨끗하고 선선한 밤의 강공기였다. 

학래 아빠가 생각해 냈다는 밤낚시의 비법. 형광찌를 낚시대 끝에 고무줄로 묶자 낚시대  끝은 이내 파란 반딧불이 되었고 낚시대를 던지고 잡아당길 때마다 반딧불이 춤을 췄다. 

건너편 마을에 하나 둘 돋기 시작하는 불빛들, 불빛들이 되어오른 물안개와 어울리자 한지에 불빛 퍼지듯 더없이 은은했다. 모든 게 하나로 어울리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절로 절로 탄성이 나왔다. 

뿐만이 아니었다. 

입질하는 것이 매번 표가 나도록 힘이 좋은 ‘그렁치’(어릴적 ‘빠가사리’라 불렀던 고기를 이곳에선 ‘그렁치’라 하고 있었다)가 연신 물리는데, 꺼낼 때마다 휘청! 낚시대가 꺾일듯 휘는 것이었다. 

“학래 아빠가 단강의 여름을 사랑할 만도 하네요.!” 

“그럼요, 그럼요.” 

서로가 기꺼이 수긍을 한다. 열대야 현상으로 밤에도 잠을 설치는 때에, 이처럼 구별된 시간과 자리가 따로 있다니. 

어디 앉아도 좋을 깨끗한 돌짝밭 위에 앉아, 혹은 누워 밤하늘의 붉은 달과 별, 우유빛 물안개와 웅장한 물소리 건너편 마을의 불빛을 즐기는 드문 즐거움. 정말 신비한 밤이었다. 

(이런 얘기를 쓰는 것이 조심스럽다. 너도나도 낚시대 메고 단강을 찾는 건 아닌지, 참고로 말하면 그런 ‘신비한 밤’은 어쩌다 있는 드문 일이고 고기도 물이 불고 흙탕물이 나갈때에라야 잘 물린단다. 혹 낚시에 미련이 있어 단강을 찾는 이가 있다면 슬그머니 낚시나 하고 돌아가기를) (얘기마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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