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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 밭에 난 긴 자국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9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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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095. 밭에 난 긴 자국들


이번에도 연대 재활할과 학생들이 봄농활을 들어왔다. 정말 동생처럼 가까이 느껴지는 고마운 젊은이들이다.
일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집안이나 친척되는것도 아닌데 그들은 단지 모자르는 일손을 돕기 위해 하루종일 땀을 흘린다. 순전한 땀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 가방을 내려 놓고선 농활부장이 일러주는대로 일손을 필요로 하는 집을 향해 삼삼오오 일을 하러 떠났다. 경운기를 타고 일터로 떠나며 시원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대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인다.
학생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를 찾아 작실로 올라갔다. 풀뽑기를 하기도 하고 고추를 심기 위해 비닐을 덮기도 하고 거름을 펴는 일을 하고도 있었다. 일이 서툴지는 몰라도 열심만은 대단했다. 젊은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거룩해 보인다.


우체부 아저씨네 밭에서 거름 펴는 학생들을 찾아 집 뒷편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이렷! 이렷!” 소 모는 소리가 쩡쩡 골짜기를 울린다. 저 윗논에서 이한조 할아버지가 논을 갈고 있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보름 이상을 병원에 입원했던 할아버지, 이번 고비를 넘기실까 모두가 걱정했는데 용케 퇴원을 하셨고 고꾸라 질듯 위태한 모습으로 논을 갈고 셨다. 자신의 병약함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소를 모는 목소리 만큼은 쩌렁 쩌렁 대단했다.
벌써 학생들은 골짜기 밭에 거름 펴는 일을 마치고 개울 맞은편 밭으로 자리를 옮기고 없었다.
맞은편 밭으로 가로질러 가는데 저만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밭에서 두 분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이한주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그냥 걷기도 힘들어 지팡이를 두 개를 짚고 다니는 이한주 할아버지가 밭에 콩이라두 심겠다시며 할머니와 함께 풀을 뽑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무릎과 손으로 기어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지나간 곳에는 무릎으로 기어다닌 자국이 허연 금으로 나 있었다. 마른 밭에 허옇게 난 긴 자국들
 그냥 집에 있기 갑갑해서 하는 일이라지만 두분께는 과하고 벅찬 일, 그래도 두 분은 잠시 일손을 놓고 이런저런 일들을 웃으며 얘기 하신다. 얘기를 마치고 둑을 내려서다보니 텅 비어 마른 감나무 둥치에 불이 옮겨붙어 타고 있었다.
그 커단 고목이 시뻘건 불덩이로 타고 있었다. (얘기마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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