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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 여름 행사 뒷풀이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55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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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91.여름 행사 뒷풀이


올해도 여름을 맞아 이런저런 행사가 계속됐다. 단강국민학교를 찾은 팀도 적지 않았고, 교회를 찾은 팀도 몇 팀 있었다.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다녀가는 팀들을 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첫째. 한결같은 프로그램.
팀들도 바뀌고 세대도 바뀌고 주제도 바뀌는데 벌어지는 일은 대부분 변함없다. 전통을 보존하려는 것인지 심지어는 내가 학생부대 했던 프로그램이 지금껏 재현되기도 한다.
바뀌는 것이 무조건 좋은것만은 아니로되 지난해에도 했으니까 반응도 괜찮았으니까 하는 식으로 이어가는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
그중에 하나, 밤중에 하는 ‘담력훈련’ 때론 ‘천로역정’ ‘출애굽 여정’이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순서. 밤중에, 그것도 늦은 한밤중에 마을의 으슥한 곳을 코스로 택해 학생들을 조를 짜 돌리는데 곳곳에 괴물(?)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으악!” 학생들이 자지러진다.
얼마나 강짜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인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을 기도로 이기라는 뜻인지. 조원끼리 서로 힘이 되라는 뜻에선지 그 프로그램을 하는데, 왜 그게 해마다 팀마다 할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됐는지 모르겠다.
고된 일 마치고 막 잠에 빠지려는 마을분들, 때아니게 잠을 설쳐야 한다. 온동네 개들은 짖지, 괴성은 연달아 터지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이게 먼 일인가 싶어 밖에 나와보면 왠 젊은 년놈들이 짝지어 (그것도 한쪽이 울며)가질 않나 영 꼴이 아니다.
때론 담배잎이 방석으로 둔갑되어 있을때도 있다. 넓적한 잎새 뚝 몇잎 따서 깔고 앉으면 깔개로야 그만이지만 그걸 위해 땀흘리는 농부의 수고까지 깔고 뭉개는 걸 철없는 학생들이 알 턱이 없다. 그놈의 담력훈련인지 천로역정인지 제발 재고해 주기 바람!


둘째. 목이 곧은 백성들
학교를 빌려 수련회를 오는 이들은 대개가 교회쪽이다. 동네 사람들 이 보기엔 한결같은 ‘믿는 것들’이다. 그런데 대개가 믿는 것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 어른을 봐도 고개 숙일 줄을 모른다.
일단 한 미을로 수련회를 가면 교회 대표 몇사람이 마을의 반장이나 이장을 찾아 인사부터 드림이 당연하지 않은가.
“큰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당연함이 당연한 듯 빠지니 어린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농사짓기 힘드시죠” 애교있는 웃음으로 손 마주잡진 못해도 어른이다 싶으면 깊이 머리숙이는 게 당연하거늘 모른다는 이유로 ‘소 닭보듯’ 그냥 지나치고마니 옆에서 지켜보기 민망하구나.
드문 일이었지만 이번 여름엔 과수원에 사과가 털리는 수모까지 있고 보니 이거 영 꼴이 말이 아니구나. 수련회를 떠나오기 전엔 목 운동, 허리운동 좀 철저히 할것!


셋째 돋보인 땀,
함께 흘린 땀 서울에서 온 한 교회의 고등부에서는 답사를 왔을 때부터 일감을 부탁했다. 찌는 듯한 더위, 그래도 그들은 이틀을 땀을 흘렸다. 당근을 캐고 자루에 담고 서울서는 꿈 같았을 흙을 만졌다. 서툰 손길들, 그래도 그 손길들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하루 두 세 시간쯤 함께 땀 흘리는 시간을 가지니 이렇게 좋은 것을. 서로가 좋은 것을.


넷째 참 배움을 위한 열린 마음.
충주에서 온 학생연합수련회, 강사로 병철씨가 결정됐다. 못한다고 빼는 걸 그저 동생들이다 생각하고 농사 지으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되지 않겠느냐 권해 어렵게 승락을 받았다.
농사꾼이 백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사, 교역자 앞에서 뭔가 얘기를 하자니 병철씨의 마음 고생이 짐작이 간다.
병철씨는 트랙터 일을 하다 말고 학생들 앞에 섰고, ‘무공해 강사’가 들려주는 ‘신선한’ 얘기에 모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얘기를 마쳤을 때 기립박수와 환호가 오래도록 이어졌고, 병철씬 ‘칠갑산’ 노래를 감칠맛 나게 불렀다.
유명한 양반 불러 책 속 얘기만 듣지 않고 농사꾼 불러 들으니 흙 얘기. 땀 배인 얘기 들으니 왜 그리 신나고 마음이 젖는지.
참 배움이 여기 있는걸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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