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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햇살 놀이방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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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06. 햇살 놀이방


‘숨어서 하는 사랑’이라면 얘길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다.
4월로 들어서며 놀이방을 시작했다. 엄마 아빠 따라 일터로 나갔다가 밭둑에서 잠이 든 아이들의 모습을 몇 번 본적이 있다. 혼자 노는 모습이야 흔한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들이 마음속으론 하나의 부름으로 전해져 왔지만 애써 이런 저런 핑계로 그런 마음을 돌려 세우곤 했었다.
이런저런 핑계라는 것이 사실은 핑계만은 아니었다. 그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였다. 무엇으로? 누가? 마음이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렇게 외면하며 미루어 왔던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기에 접어든 이 길을 걸으며 오히려 서툰 습관으로 굳어지는 그분을 향한 사랑의 새로운 확인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은 얼만큼이나 진실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면서도, 가책 때문이었을지.
아기를 무조건 좋아하는 일에 아내는 결코 천성적이지 못하다. 그저 좋아하는 정도일 뿐 의외의 사람들이 드물게 갖는 천성적인 애정과는 얼만큼 거리가 있다. 천상 일을 하면 자기 몫, 그 매임의 불편을 알면서 아내는 일을 맡았다.
아침 시간이 제일 힘들다. 이제 세 살짜리 꼬마들. 아직은 엄마가 데려다 주는데 좋아라 오면서도 막상 엄마와 떨어질 때가 되면 대책 없이 울어버리고 만다.
오분 십분 안에 울음이 그치면 다행이고, 십분 지나 삼십분을 울어대면 더는 대책이 없다. 돌려보내야 한다. 이별 불안증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런 건지, 하기야 엄마와 떨어지기엔 아이들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

계획을 세운 것이 작년 가을, 헌금을 드리기로 했다. 괜한 일을 귀찮게 버리는 거 아닌가 싶은 심정도 분명 있었던 교우들, 젊은 사람 드문 농촌에서 하필 놀이방이 뭔가 싶은.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모인 헌금이 350만원. 물론 우리만의 헌금은 아니다. 정지 않은 분들의 정성이 함께 모아졌다. 마을 회의가 있던 날 동네 어른들을 만났다. 회의가 끝날 무렵 시간을 얻어 놀이방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런 저런 궁리 끝 나름대로 내린 가장 좋은 건축 방법은 마을 분들이 나서 놀이방을 짓는 일이었다. 짓되 흙벽돌로 짓는다면 더욱 좋으리라. 그런 제안을 받아 준다면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마을 발전기금으로 내어놓고 싶었다.
뜻은 좋으나 방법이 틀렸다. 한마디로 그랬다. 당장 의견이 나뉘었고, 품값이 계산되기 시작했다.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뱅뱅 같은 자리만 맴돌 뿐이었다. 우린 아이가 없으니 상관없다며 빠져나간 이도 있었다.
늦은 밤, 맥없이 돌아온 내게 아내가 핀잔을 준다. 기대가 컸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다. 좁다란 마음자리, 늘 거기가 시작하는 자리 아니었던가.
흙벽돌집에 대한 미련이 결국은 조립식 주택으로 바뀌고 말았다. 마을의 젊은 남자들이 나서 기초공사를 해 주었다. 저녁 아홉시가 넘어 끝나도록 애들을 썼다. 제각각 바쁠 수밖에 없는 농촌에서 그런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놀이방을 다 지으면 젊은 사람들의 만남의 자리로 개방하리라.
조립식은 너무 쉬웠다. 하루만에 집이 세워졌다. 몇 달 걸려 준비해온 일이 하루만에 집으로 서다니, 허전하기까지 했다. 사백만원. 늘어난 두 개의 창문, 챙값이 보태져 열 평 조립식 값이 사백만원이었다. 기초공사 할 때 십팔만원 들었으니 합하면 사백십팔만원, 건축헌금에다 교회 돈을 모두 합쳤지만 모자랐다.
교회재정 빵구, 이상했다. 불안기도 섞였다. 완전한 빈털터리에서 모자란 만큼 뒤로 또 물러서야 하는 황당함. 떨리는 손으로 돈을 찾아 모자란 공사비를 지불한다. 그리고도 보일러 공사가 남았다. 예산도 없이 뽑아본 게 재료비만 칠십여만원.
황사바람 날리는 창 밖 풍경을 책상에 앉아 멀거니 내다본다. 황사, 하늘 가득 뿌연 바람....
큰 교회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일이 우리에겐 힘겹고 어렵다. 몇 군데 전화를 할까.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자존심, 불쌍함. 그러던 중 걸려온 장거리 전화. 모든 사정 알고 있다는 듯 그는 보일러 값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전에도 그는 해외여행 경비를 놀이방에 보탠 적이 있다.
몇날 며칠을 몸으로 때운다. 모터 있는 곳에서 보일러실까지 물을 끌기 위해 파이프를 묻어야 한다. 삽 한 자루 깊이로 땅을 파야 하는데 왠 돌이 그리 많은지, 채석장에서 돌 캐듯 땅을 파 나간다. 허리가 휘청이도록 무거운 돌들. 터지고 찢기고, 일의 서툼이 당장 손으로 왔다. 곡괭이질 몇 번 하고 돌 들어내고 흙 퍼내고 그러다가 양쪽 팔 흙덩이 사이로 벌려 쉴 때 문득 지나는 한 생각.
‘이게 십자가구나!’
교인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왜 아무도 안 오는 걸까? 하기야 올만한 교인이 누가 있겠는가만.
올망졸망한 놀이방  아이들만 오가며 “목사님, 뭐해요?” 묻고.
‘햇살 몰이방’이라 이름을 붙인다.
햇살, 햇살, 햇살!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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