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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여름 마을 축제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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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526.여름 마을 축제


한참 가을에 웬 ‘여름마을 축제’냐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여름마을’ 이란 나름대로 멋을 부려 본 말이 었다. ‘농촌(農村)’을 풀어 쓴 것으로서 ‘열매 맺는 마을’이란 뜻을 가진 순 우리말이었다. ‘열매 맺는 마을’ 참 그럴 듯한 말이 아닌가.
모이는 중고등학생이래야 열 명이 고작이 었지만 어떤 ‘일’에 함께 몰두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의미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에 모두들 공감했다. 3년 전 인가 서툴게 시작하고선 그냥 그쳐버렸던 문학의 밤을 다시 잇기로 한 것이다.
‘많지도 않은 우리들이지만, 좋지도 않는 여건 이지만’ 초대장에 쓴 그대로 어려운 조건, 적은 학생 있지만 감수하고 준비하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지 한달 반, 시간은 쉬 흘러갔고 그래도 모여 준비한다 했지만 부족함이 많았다.
‘여름마을 축제’ 새끼를 꼬아 쓴 제단 글씨가 글씨 뒤에 붙인 색지를 배경으로 그럴듯이 보였다. 멀리서는 서곡, 장양에서까지 학생들이 찾아와 주었다.
상지대 정찬성 교수님의 ‘창조론’에 대한 소개 슬라이드까지 준비된 성의있는 강의가 어쩔 수 없는 난해함을 한껏 덜어주었다. 학교에서 진화론만 배우는 학생들에겐 좋은 생각 거리가 되었으리라.
이어진 발표순서, TV, 특히 코미디 프로에 흉내내기를 삼가자던 처음의 약속을 서툼을 감수하면서도 아이들은 지켜주었다.
‘널 보내며’ 와 ‘단강을 떠나며’라는 서간문 낭송. 머잖아 단강을 떠나게 될 종하가 촛불 하나를 마주하고 경림이와 마주 앉았다.
‘널 보내기 싫다’는 경림이 편지가 복받친 감정으로 울먹거렸고, 단강은 나의 영원한 고양이라고 종하는 종하대로 목소리가 가라 앉았다. 어쩔 수 없는 떠남과 어쩔 수 없는 떠나보냄의 서글픔이 아프게 뒤엉켰다.
엠마오 중창단과 함께 참석을 한 김명숙 집사님께선 흰무리 떡을 한 상자 쪄 오셨다. 늘 단강을 그리워하시던 분, 따뜻한 떡은 그분의 정성과 함께 얼마나 맛있던지.
모두들 돌아가고 뒷정리를 마친 후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걱정 많았던 행사를 그런대로 훌륭하게 치러낸 아이들의 표정마다엔 기쁨이 배어났다.
‘어렵게 준비된 잔치 일수록 더 아름다운 법’이라던 생떽쥐베리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고, ‘너희들은 참 좋은 녀석들’이라는 칭찬 한 마디로 아이들의 수고를 받았다.
점점 줄어드는 아이들, ‘여름마을 축제’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마음 저 아래에 고이는 아픔을 알기에 아이들의 기쁜 표정을 더욱 귀하게 받고 싶은 밤이었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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