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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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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64. 단강의 봄
교회 뒤뜰의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단강에서 제일 먼저 봄으로 피어나는 산수유, 파꽃처럼 생긴 노란 산수유가 가지마다 피어올랐다. 단강에 봄이 온 것이다.
여기저기 연기가 피어 오른다.
작년 농사 짓고 밭에 남은 비닐들과 말라버린 대공들을 모아 불을 지르는 것이다. 논과 밭, 들마다 불을 놓기도 한다. 이 골짝 산밭, 저편 들녘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때마다 봉화가 생까나곤 한다. 위험을 알렸던 봉화, 때 되어 지르는 불이지만 피어 오르는 연기 속엔 그 심정 담겨 하늘로 오르지 싶다.
방앗간 방아소리가 잦아졌고, 길엔 경운기가 바쁘다. 그중 승학이 아빠가 바빠졌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승학이네, 그 넓은 강가 밭을 갈아야 한다.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당분간 밭 가는 일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일하며 듣느라 크게 틀어놓은 유행가 곡조도 며칠간은 강가 밭에 신이 날 것이다.
담배와 고추씨를 뿌리는 몇몇 하우스 안의 사람들, 강가 밭, 당근 씨를 심는 동네 거의 모든 아주머니들. 산수유와 함께 단강의 또 한번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며칠 전 원주에 나갔다. 막차로 돌아올 때 차 안에서 몇 분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아주머니들은 웃으며 “놀러갔다 와요.”했지만 실은 공장에서 퇴근하는 길이었다. 문막 농공단지에 취직을 한 것이다.
산 하나 넘어 정산까지 걸어가 아침 7시 첫차를 타고 출근을 하고선 어둠 속 막차로 돌아오는 것이다.
“힘들지 않으세요?” 했더니
“힘들긴요. 놀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농사보다 힘들겠어요?” 한다. 몇 개 공장이 더 가동되면 몇몇 남정네들도 공장으로 나갈 것이다.
산수유며, 냇물이며, 강이며, 둔덕마다 피어오른 파란 냉이며, 온갖 잡풀이며, 변함없는 생명의 기운으로 찾아온 단강의 봄이 왜 이리 어두운지.
그 좋던 강가에 쉽게 나가질 못한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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