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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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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89. 순명의 삶
원주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막 신작로에 접어들고 보니 변관수 할아버지가 저만치 앞에서 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10여년 함께 지낸 덕에 대강의 걸음새만 보아도 누가 누군지를 짐작 할 수 있지만 변관수할아버지는 더욱 그렇습니다.
길을 걸을 때 할아버지 몸에서 제일 높은 곳은 머리보다는 굽은 허리지요. 할아버지 옆에 차를 세우고 행선지를 물었습니다. 마침 귀래를 가신다 하여 차로 모셨습니다.
“아유, 고마워유”
이가 다 빠져 함몰되듯 오무라진 입으로 환하게 웃으며 할아버지는 인사를 하며 차에 탔습니다.
차에 탄뒤 문을 닫는데 ‘쾅!’ 문 닫는 소리가 여간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문짝이 부서져라, 문을 닫았습니다. 이따금씩 마을 노인분들을 차로 모셔보면 대개는 문을 되게 닫곤합니다.
아마 몇 번은 문이 덜 닫혔다는 핀잔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근력이 약해진 것은 스스로도 아는 일인데, 근력이 약해서 문까지 제대로 못 닫게 되었나, 그 뒤부터는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닫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을 것 입니다. 사실이 어떤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해합니다.
“할아버지, 의료봉사 나온 곳에 치료 받으러 안 가세요?” 마침 서울 정동교회에서 단강초등학교로 의료봉사를 나와 있던 때라 학교에 들려 치료를 받으시면 좋지 않을까 여겨졌습니다.
“에이, 이젠 죽을 때가 다된 걸유” 할아버지의 대답은 쓸쓸한 듯 담담했습니다. 그리고 단순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농사 지으시나요?” 다시 한번 여쭙자 “뭐 논에 벼 쪼금하고 밭농사 쪼끔하고죠 뭐.” 할아버지는 자식처럼 여기는 논이 있습니다. ‘자식처럼’이란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해마다 확인하고 합니다.
“올해도 농사 지으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어 여쭸습니다. 치료받는 일을 스스로 포기할 정도로 많이 연로하셨는데, 할아버지의 의중이 궁금했습니다.
“농사야 죽을 때 까정은 져야죠.” 할아버지의 대답은 어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습니다. 농사란 죽을 때까지 짓는 것이라 했습니다.
순명한 삶! 문득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환했습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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