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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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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145. 임산부
물건을 살 일이 있어 자유시장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가게 사이의 통로를 막 지날때였다. 한 그릇가게의 주인 아주머니가 몹시 홍분하여 막 화를 내고 있었다. 주변에서 가게를 하는 몇 사람이 모여들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겨우 분을 삭힌 아주머니가 들뜬 목소리로 방금 전에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아주머니가 가게 안쪽에 앉아 있는데 웬 젊은 여자가 지나가면서 바깥쪽 진열장 위에 진열해 놓은 컵 두 개를 가만히 집어 들더란다. 물건을 사려고 그러나 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여자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컵 두개를 은근슬쩍 가슴에 안고 그냥 가버리는 이었다. 뭐 특별히 좋은 컵도 아닌 그냥 평범한 유리컵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순간적으로 큰 소리를 지르고 싶은걸 겨우 참고 가만히 뒤따라가 어깨를 툭툭 쳤단다. 컵을 훔쳐 가던 여인은 돌아섰고 뒤따라 온 가게 주인을 보더니 품에 안고 가던 컵을 돌려 주었다. 컵을 돌려 주면서도 특별히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저 재수 없어 걸렸다는 표정으로.
그런데 아주머니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인의 배가 볼록하게 나와있었던 것이었다. 젊은 여자는 임신을 한 상태였던 것이다.
모인 아주머니들은 얘기를 들으며 한결같이 혀를 찼다. 어떻게 뱃속에 아기를 가지고서 남의 물건에 손을 댈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젊은 게 그래갖고 뭔 앨 날끼여?” 욕반, 걱정 반인 한 아주머니의 탄식이 아니더라도 정말 그 일은 마음속에 큰 어두움으로 전해져 왔다. 우리의 도덕적 마비증세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더 좋은 세상, 서로 믿고 허물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물려주어야 할 우리들이 오늘 스스로 깊이 병들어 있음을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운 날씨 탓을 하며 쉽게 흘려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얘기마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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