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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그날 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7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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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119. 그날 밤

 

저녁 무렵 한 차례 된 소나기가 쏟아진 그날 밤, 밤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했다. 긴 가뭄과 폭염이 계속되던 중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지니 한밤중에도 꺾일 줄 모르던 후덥지근한 기운이 싹 가시고 밤공기는 더없이 상쾌했다. 덩실 달마저 떠오르니 그냥 잠들기에는 아까운 밤이 되었다.
성경학교 행사중이라 몸은 파곤했지만 집을 나섰다. 천천히 길을 걸어 신작로께로 향했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선선한 공기와 맑은 달빛, 밤기운에 취할 것 같은 마음으로 산책을 했다.
막 염태고개로 오를 때였다. 저만치 동네 쪽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들어보니 학교로 수련회를 온 교회팀 같았다. 마치 훈련병을 교육시키는 조교처럼, 아니 조교의 명령을 복창하는 훈련병들처럼 점점 고함을 질러대더니 이어 노래 소리가 이어졌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이란 군가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데 노래라기 보다는 고함에 가까웠다.
아차 싶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둘러 돌아왔다. 다리께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교회서 수련회 온 탐인가를 확인하자 그렇다고 한다. 방금 부른 노래 소리 들었냐 하자 들었다 한다. 당장 가서 그만두게 하라고 했더니 당신이 뭔데 그만두라 말라 참견하냐 한다. 우리는 학교를 빌려서 왔고, 학교를 빌렸을 때는 이만한 정도야 허락받은 거 아니냐며 오히려 나를 다그친다.
속에선 불이 오르고 말문이 막히고, 어이가 없어 쳐다보자 한술 더 뜬다. “우리는 지금 영성훈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논리도 정연하다. 무식한 사람 훈계하는 투다. “이런, 이런 이런 대가리가 섞어 빠진 놈이 있나.” 대뜸 욕이 쏟아져 나왔다. 목사가 욕을 했다고 욕할런지 모르지만, 확 주먹이 나가려는 걸 겨우 참고 내뱉은 말이었다.
“영성훈련이라고? 이놈아 저게 영성훈련이냐? 내가 보기엔 영성훈련의 정 반대짓거리에 다름 아니다,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욕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나는 정말 욕을 잘 못한다. 핑계가 아니다) 알고 보니 놈은 모신 학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고, 수련회 지도교사로 따라온 터였다. 놈이 신학생이란 말을 듣자 퍽 서글퍼졌다. 신학 한다는 놈의 생각이 저 모양이라니. 내 후배만 되도 말로 할 것도 없을 일이었다.
놈은 자꾸 나에게 누군데 남의 일에 참견이며 욕까지 하냐며 대들었다. 이 동네 사는 사람이란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단강교회 한희철 목사라 신분을 밝히자 그제서야 움찔하는 표정이다. 책도 읽었고, 내일 자기네 수련회 와서 특강 하는 걸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놈아. 내가 다 창피하다. 내가 목사길래 망정이지 정말 마을 사람이었으면 넌 몰매를 맞아도 쌌어. 지나가던 누가 조용히 하라면 ‘죄송합니다’ 할 일이지 그래, 세워놓고 설교를 해. 정신없는 놈 같으니라구.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지 이 늦은 밤에 웬 소란이냐 ?”
“우리는 신중하게 프로그램을 선택했고, 늦은 시간도 아니고...” 녀석은 그런 놈이었다. 한번 동네에 들어가 보라고 지금 안 자고 있는 사람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라고 얘기하다가 문득 내가 우스워졌다. 말할 놈하고 말을 해야지. 이 좋은 밤 이런 놈하고 얘기하고 섰다니. 내 스스로 한심했다.
다음날 특강을 맡은 시간, 시간이 되어 학교로 내려가려다 시간을 확인할겸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은 전도사 왈 “죄송해서 으특하죠. 계획에 없던 담임 목사님이 내려오셔서 굳이 특강 시간을 당신이 맡겠다고 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정말 영성훈련이 특별한 교회구나, 그렇게 체념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겨우. (얘기마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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