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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 낡은 상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9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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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51.낡은 상

 

서재에 상 하나가 생겼다. 나무로 된 작고 둥근 상인데 서재에 두고 쓰니 그런대로 좋고 잘 어울린다. 동네 할아버지한테 얻어왔다. 사실은 얻었다기 보단 주워온 것에 가깝다.
준이네가 낡은 흙벽돌집을 헐어내고 붉은 벽돌집을 새로 짓는다. 집짓는 곳에 들렸다가~준이네 옆집인 최영관 할아버지네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다. 집에 들어서니 집안이 온통 어수선 하다. 여기저기 짐들이 널려 있는게 이사 가는 집 같다.
"어쩐 일이세요 ?" 여쭈었더니
“내일 집을 헐어유” 하신다.
역시 흙벽돌집인 할아버지네 집도 낡을대로 낡아 어쩔까 하고 있던 참에 승학이 아빠가 조립식 주택을 소개해 주어 그걸로 집을 짓기로 했단다. 어디 지었다가 뜯는 것이 있는걸 값싸게 소개를 했던 것이었다.
단강에서 태어나 한평생 단강을 떠나온 적 없는 할아버지. 이제는 집이 더 이상 못버텨 새로 지을 때가 되었다. 집과 사람, 할아버지의 몸도 노쇠할대로 노쇠했지만 그 보단 집이 더 낡아 먼저 헐린다. 괜히 그 사실이 묘했다.
같이 일을 거들었다. 다음날 포크레인이 들어와 집을 헐기로 해 세간살이를 바깥 광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들, 몇십년 동안 버릴걸 버리지 않고 살아온 할아버지집 세간살이는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것들로 보통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큰맘을 쓴다.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고, 필요 없다 싶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구석구석에서 먼지를 수북히 뒤집어 쓴 채 퀘퀘 묵은 것들이 쓸만한 것들과 구별이 되어 태워지고 버려지고 했다.
버린 물건 중에 상이 있었다.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 쓴 상이 한쪽에 버려졌다.
“할아버지, 이 상 제가 가져도 될까요?” 
“그 낡은 걸 뭘 하게유. 필요하믄 가져가유, 내는 필요읍스니” 그렇게 상을 얻었다.
집에 와 먼지를 털고 걸레로 닦으니 본래의 상 모습이 나타났다. 가운데에 ‘福’ 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리가 좀 흔들거리고 가장자리가 닮기도 했으나 상이 견뎌 온 세월이 빛어내는 은은함이 정겹다.
저 상위에서 만두도 빚고 칼국수도 밀고 잔치상도 차리고 장례상도 차리고, 상이 해왔을 일을 생각하니 정겨움이 더했다. 필요없다 버린상을 먼지를 털고 걸레로 닦으니 정겨운 물건이 되었다. 세월과 일상이 되살아난다.
털고 닦으면 다시 되살아 날, 정겨움으로 되살아날 것들이 상만이 아닐텐데.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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