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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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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73. 뒷산 등산
마을의 젊은 반장 병철씨와 함께 마을 뒷산에올랐습니다. 전번부터 몇번 얘기가 있던 것을 모처럼 날을 잡았습니다. 마을에 살면서도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간다고 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게 아니었습니다.
베낭을 하나씩 둘러메고 윗작실 꼭대기로 하여 산으로 올랐습니다. 이름하여 사방산 떡갈봉입니다. 사방산으로 오르는 좁다란 오솔길엔 밤이며 도토리들이 제법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그곳까지 주우러 오는 아이들도 없고 다람쥐나 청설모가 먹기엔 남고, 그 탐스런 알밤들이 톡톡 떨어져 길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깊은 산골짝 층층이 늘어선 조그만 논, 그 논에도 벼들은 누렇게 익어 가을볕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한조 할아버지가 짓는 농사입니다. 여든이 다된 할아버지가 그 깊은 산다랭이 논을 버리지 않고 농사를 지은 것입니다. 며칠 전 할아버지는 몸이 안 좋아 원주에 있는 병원에 입원중에 있습니다. 누렇게 일렁이는 산다랭이 벼를 바라보는 마음이 숙연했습니다. 투둑투둑 튀는 하많은 메뚜기들이 그 땅이야말로 병든 땅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한참 산길을 오를 때 "탕-!" 하는 뜻밖의 소리가 골짝에 울려 퍼졌습니다. 병철씨를 따라 소리나는 곳을 찾은 난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오리나무 아래 ‘물방아’가 있었습니다. 윗논에서 내려오는 물이 호스를 통해 아랫쪽으로 떨어지는데 아랫 쪽에는 길다란 막대기 끝에 플라스틱 소주병 가운데를 벌린 통을 달아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소주병에 물 이 차면 아래로 기울게 되는데 그러면 소주병을 단 막대기가 훌쩍 들려지게 됩니다.
아래로 기운 소주병은 물을 쏟고서 다시 위로 올라오게 되고 그러면 위로 들려졌던 막대기가 자연히 제자리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막대기가 떨어지는 끝쪽에는 빈 깡통이 놓여있습니다. 막대기가 떨어지며 깡통을 내리쳐 그때마다 ‘탕!’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막대기를 몇 개 엮고 돌멩이로 눌러 만든 엉성하기 그지없는 물방아였지만 물이 고일 때마다 물방아는 어김없이 "탕-!" 탕-! 소리를 울려댔습니다.
곡식을 먹으러 내려오는 산돼지며 새들을 쫓는 기구였습니다. 하기사 아무 생각없이 곡식을 먹으러 내려오던 돼지가 그 소리를 듣게 된다면 혼비백산 내뺄 도리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영문을 몰라 눈이 휘둥그래 진 채 말입니다.
물방아 또한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이한조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물방아를 보는 순간 난 무슨 숨겨진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얼마나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깊은 산다랭이에 할아버지가 만든 물방아, 엉성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기막힌 삶의 지혜, 난 붙잡힌 듯 한동안 그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탕- 탕- 탕- 탕-!"
물을 채운 물방아가 깡통을 울려댈 때마다 마음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물방아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머리 숙여야 할 거룩한 도구였습니다.
병철씨가 꺾어 만들어준 나무 지팡이를 짚고 산속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붉고 맵게 물든 키작은 단풍들, 가을산 아름다움의 주인이 바로 그들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산속 공기는 아래의 공기와는 또 달랐습니다. 속까지를 깨끗하게 비워냅니다.
더러는 도토리도 줍고 작은 영지버섯도 따고 능이버섯도 따고 '가을 산에 오르는 것이 외갓집 가는 것보다 낫다'는 옛말에 실감이 납니다.
능선을 타고 올라갈 때 병철씨가 묘자리 하나를 소개합니다. 세모 살았던 자리라는 것입니다.
시묘(侍墓)를 이곳에선 '세모 살았다'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시묘라 함은 부모의 거상(居衷)중에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을 지내는 일입니다. 몸을 씻지 않고 (세수도 안 하고), 수염이나 머리도 안 자르고 3년을 부모님 무덤 옆에서 아침 저녁 제를 올리며 살았던 옛 풍습, 그걸 옛 사람들의 미련함만으로 돌리기엔 오늘의 우리는 너무 형식치레로 쉽게 끝내고 있는것 같아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떡갈봉에 올라 베낭을 열고 점심을 먹습니다. 얘기소리 듣고 반찬 냄새 맡고 왔는지 산새들은 몰려들고, 수북히 쌓인 솔잎 위에 앉아 맑은 바람에 땅을 말리며 먹는 밥의 단맛이라니.
그 깊은 산속까지 하루에 두 번 나무하러 다녔던 병철씨 어릴적 얘기부터 마을 얘기, 농촌 얘기, 얘기는 이어졌고 산을 내려올 때 쯤엔 병철씨가 오래된 친구처럼 혹은 아우처럼 더욱 가깝게만 여겨졌습니다.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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