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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고추모종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5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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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778.고추모종


“올라가시면 여러 날 계시겠네요”
주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교우들과 인사를 나눌 때 허석분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설을 쇠러 다음날 자식네로 갑니다.
“글쎄 모르지유. 그치만 금방 내려와야 될 것 같애유.”
모처럼 서울 나들이, 자식이며 손주들 오랜만에 대할텐데 금방 내려오게 될 것 같다니 왜 그러시냐 했더니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고추 모종 때문에유. 모종한 거 물도 주고 돌 봐야지유.”
또 다시 눈이 내려 한 겨울이고 아직도 설 전, 겨울이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이 겨울 한복판에서 고추 모종을 돌보며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날짜로 헤아려도 아직 멀었고, 짐작으로 헤아려도 먼 훗날 일 같은데 사람들은 흰눈 쌓인 이 겨울 한복판에 고추씨를 뿌려 싹을 길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배 마치고 돌아와 책상에 앉아 달력을 보니 2월 4일 붉은 글씨 날짜 밑엔 설날이라는 글자와 함께 ‘입춘’이라는 절기가 쓰여 있었습니다.
아, 봅은 그렇게 겨울 한 복판에서 맞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내리고, 길이 얼어붙고, 삭풍이 매서워도, 언 흙을 녹여 거기에 씨를 뿌림으로 앞당겨 봄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때의 예감이란 저만치 앞서 준비하는 이들의 것이었습니다.
한 겨울 눈이 쌓인 추위 속에서 길러내는 고추 모종, 한 참을 경건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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