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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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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9. 거룩한 자리
그분은 늘 그곳에 있었다.
원주 A도로와 B도로 사이 중앙시장 골목, 해가 한 중간에나 떠올라야 잠시 햇빛이 건물 사이로 비집듯 비취는 곳이다.
몇 가지 과일을 상자에 담아 펼쳐 놓고 장사를 하는 주름이 제법 많은 아주머니이다. 가끔 나는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골목을 지날 때마다 멈짓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그 아주머니, 과일을 팔고 있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모습이다. 조그만 좌판 위, 그분은 정갈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책을 읽곤 했다. 낡은 성경책이었다.
겉의 빨간색이 허옇게 변해버린 아주 낡은 성경책이었다. 읽던 곳 바람이 덮지 못하도록 성경 귀퉁이엔 빨래집게를 꽂아 두었다. 허름한 옷차림, 오가는 사람들 마다하지 않고 틈틈이 성경을 읽는 그분의 모습이 내겐 聖스러움이었다.
제단 위 가운 입고 성경 든 사제보다도 내겐 더 거룩한 모습이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분을 본다. 생의 거룩한 자리에 무릎 꿇은 한 정갈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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